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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밑빠진 자연에 물붓기, <하얀 하늘 아래에서 (Under a white sky)>

인류가 망친 세상을 인류가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 쉬운 대답은 없을 것이다. 2015년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엘리자베스 코버트는, 전 세계에서 최신 공학으로 무장 후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임무를 띈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닌 후 새 책 <하얀 하늘 아래에서 (Under a white sky)>를 출간했다. 

인류는 등장 이후 얼음이 있는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 지역의 토지 절반 이상을 바꾸어왔고, - 7천만 제곱킬로미터 상당 - 나머지 절반은 이 전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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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모두 합치면 세상 모든 포유류를 합친 것보다 3배 이상의 크기를 자랑한다. 만약 인류가 기른 가축 무게 까지 합한다면 이것은 22배에 가깝게 상승한다.

인류는 등장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백악기 같은 지질 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 <인류세(Anthropocene)>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이 현대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세상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고, 이 것은 필연적으로 지구의 모든 활동을 교란시키고 있다. 이에 따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출현 중이고 배출한 온실가스에 스스로 덥혀져 죽을 위기라는 상황까지도 알고 있다. 그럼 처음엔 꺾지 못할 거란 자연의 힘도 무너뜨린 인간이라면, 그 역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연을 망가트릴 만큼의 힘이라면, 의지만 있다면 다시 복원하는 것도 가능치 않을까? 

 

인류는 불행히도 복원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도 아닌, 언 발의 오줌누는 식의 당장의 면피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소개되는 시카고 강에선 무역증진과 미시간 호수로 흘러드는 폐수를 우회하기 위해 서쪽의 미시시피 강과 운하로 이어놓고선, 남쪽에서 아시아산 붕어 같은 외래종이 침입을 해오니 수중에 전기 철책을 설치하고 막는 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래종 잡겠다고 물에 전기를 흘리는 게 어떤 식의 자연 복원인지 알 수 없다. 

 

미시시피 강에 넘쳐나는 아시아산 붕어, 처음엔 강의 수질관리를 위해 도입되었다. (출저: USGS)

미시시피 강 하구에선 강의 범람과 허리케인으로 오는 피해를 막겠다고 방파제를 올렸다가, 되려 범람에 의한 퇴적이 줄어드니 많은 토지가 차츰 바다로 가라앉게 되고, 그걸 막겠다고 말 그대로 강바닥을 퍼 날라 새로운 땅을 만들어 올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굳이 자연의 흐름을 깨고 나서 다시 그걸 수습하겠다고 강바닥을 긁어 나르는 대규모 토목사업은 또 화석연료의 힘을 빌려 이루어질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류의 경제활동으로 무너진 생태계를 인공적인 방법으로 되살려 보려는 노력은 마치 마지막 불씨 살려보겠다고 애처롭게 바람막는 안타까움까지 든다. 그 모든 위기의 근원이 불씨 살리는 장본인이란 건 참 아이러니하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사막 '데스벨리'의  온천에서만 자라는 송사리를 살려본다고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번식을 해보려 하고 , 외래종 두꺼비를 잡겠다고 유전자 조작 기법을 쓰며 대규모 산호초를 멸종에서 지켜보고자 인간이 만든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종을 만드는 것들이 그런 식이다. 이게 동물원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면, 정말로 이게 동물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인류는 몇몇 종을 벼랑끝으로 내몬 후 다시 끌고 오는 방법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물을 만들었다. 우아하게 말하면 "보존-의존형" 동물이라 부르겠지만 자신을 박해한 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비꽈 "스톡홀름 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애초에 다른 종이 전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선, 인간의 끊임없는 돌봄 노동으로 다른 종을 멸종에서 구원하는 은 복원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동물원처럼 가둬놓은 후 멸종위기종의 유전적인 보존은 이뤄졌단 식의 자기 연민을 할 거란 불안한 확신이 든다. 

 

애리조나주 소재 송사리 연구 시설, 여기서 재생산 연구가 이루어진다. (출저: reef2rainforest)

마지막 챕터인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에 따른 온난화 문제에선 더 과감한 주장이 펼쳐진다. 유황가루를 성층권에 뿌려 햇빛을 차단하잔 식이다. 인류를 지킬 마지막 방법, 자기도 이게 싫지만 이것말고는 방법이 없단 식의 수식이 붙는다. 인류가 스스로 달려온 이 외길에서 마지막 엽기적인 해결책(?)의 설득으로 제시되는 게 처음의 그 막무가내 개발과 같은 식이다. "이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인간이 망친 것을 인간이 덧칠하려 드는게 지금까지 되려 비용만 올리고 효과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이것에 대한 답은 알고 있다. 앞서 말한 아시아산 붕어가 오는 게 무섭다면 예전처럼 운하를 없애고 시카고는 스스로 폐수를 처리할 만큼 정화를 강화해야 한다. 루이지애나는 아마도 1년 내내 사는 동네가 되긴 힘들 것이다. 떠날 것을 권고하고 다른 주거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래종을 잡겠다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다른 종을 들이는 자체의 행위에서 근본적 결점을 찾아야 한다. (온난화는 다른 개념의 문제다, 이미 배출의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이 저지른 것인데 비용은 세계가 "공평하게" 나눠서 지불하자고 따지는 문제기 때문이다.)

 

이 모든게 정치적으로 매우 첨예한 질문인 게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은 유권자 눈치만 볼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엄청난 "복원비용"을 치르고도 예전만큼의 경제적 개선을 찾기 힘들 것이란 걸 알기에 아무도 이런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덕분에 강의 방향을 바꾸고 전기를 아래로 흐르는 식의 보다 저렴한 "복원방법"을 찾게 된다. 

 

인류가 전세계 생태계의 지평선을 바꿔놓으리란 건 이제 다들 알고 있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인지가 관권이다. 앞서 말한 유황가루를 뿌리면, 비교적 공기가 깨끗한 곳도 파란 하늘을 버리고 완전히 하얗게 변할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하얀 하늘 아래인 이유다. 유황가루는 계속해서 침전되어 내려올 것이고 인류는 계속해서 대규모로 대기 중에 유황가루의 양을 적절히 유지해야 될 것이다. 누가 이런 활동을 주체할까? 다른 문제는 없을까?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외래종 두꺼비를 풀어놓았을 때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천재 사업가들이 구원할 지 모르고, 예전의 기후를 돌릴만한 신기술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증인이라면, 그렇게 믿는 것이 오히려 더 나락의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참 전의 철학자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B.C 20세기 경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쇠스랑으로 자연을 몰아낸다 한들, 삐둘어진 경멸감에 이겼다고 자신하는 사이, 그녀는 항상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