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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동인도 회사의 무서운 성장 <The Anarchy>

당시 무굴제국은 당시 인구의 5분의 1 가량인 1억 5천만 명을 거느린 대국이었는데, 세계경제 총생산량의 4분의 1을 내놓을 만큼 막강한 힘을 자랑했고, 그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업 생산량일 뿐만 아니라, 섬유 생산에 있어서는 가장 독보적인 나라였다.

그렇게 큰 나라가 어떻게 런던에서 무역만을 목적으로 한 동인도 회사라는 곳에 50년도 안되는 세월에 나라가 넘어갔나? 윌리엄 달림플의 책 은 동인도 회사가 그 짧은 세월 동안 인도를 집어삼키게 된 과정을 다룬 책이다.

 

포르투갈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는 것을 우려했던 영국 상인들이 인도와의 무역을 위한 특별한 기업형태를 원했고, 결국 영국은 주식투자 형태로 위험을 분산하는 선진적인 기업형태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업은 애초에 무역만을 위해 설립된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와 비슷한 형식을 스스로 운영한 것은 인도와의 무역 권리를 둘러싼 유럽 강국끼리의 치고받는 싸움을 염두에 둔 것이지, 애초에 인도 대륙을 삼키려던 것은 아니었단 것이다.

 

벵갈 지역에서 작게 시작했던 동인도회사는 여차하면 지역 군주의 변덕에 밀려날 입장이었고, 항상 비위 맞추기 바빴던 처음의 모습은 무굴제국이 외세에 의해 수도 델리가 갈갈이 찢겨 나가는 모습을 목도하며 점점 변하게 된다. 이 시점까지는 아무도 동인도 회사가 어떤 세력쯤이라고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막상 기회(?)는 다른 곳에서 온다.

 

동인도 회사는 다가오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긴장한 나머지 영지였던 콜카타의 성벽을 지역 군주에 허락도 없이 보강하다가 노여움을 사고 결국은 무굴 군대에 밀려 쫒겨난다(?). 여기서 잡힌 포로 백여 명을 구덩이 같은 감옥에 가두고 하루를 나 두었는데 많은 수가 질식사했고 이 감옥을 "콜카타의 검은 구멍"이라 불렸고 영국에서 오랫동안 인도인의 야만스러움, 무자비함을 선전하는 도구로써 쓰였다고 한다. 동인도 회사와 영국이 무려 140년간 인도에 저지른 만행에 비할 때, 이런 선전은 얼마나 초라한가? 이 "검은 구멍"을 블랙홀 이름의 시초라 보는 이론도 있다.

 

때 마침 프랑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러(?) 왔던 군대는 오히려 자신들을 털었던 벵갈 군주를 향해 진군하고 여기서 역사적인 동인도 군대의 승리가 이루어진다. 섬나라도 아닌 인도 한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다는게 가능하단 걸 알게 된 그들은 이미 혼란이 극도에 치솟은 인도에서 각 지역의 쿠데타 지원으로 큰돈을 번다. 그럼에도 한 나라 지역을 통솔하는데서 오는 이익이 보다 장기적이고 더 오래 착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란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모든게 런던 한구석에 위치한 동인도 회사의 본부가 아니라 회사의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의 결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특이하다. 전신 같은 것도 없는 시점에서 인도에서 쓴 편지는 몇 달이 지나서야 런던에 전해졌고 이미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본부가 할 수 있는 것 별로 없었다. 입신양명에 눈이 먼 장군들은 인도 군대와 전면전에 나서거나 정부를 전복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고 그런 전선의 결정들이 부채 증가와 무역에 영향을 줄까 염려해 소극적이던 본부의 이사진들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동인도 회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여기서 얻은 무역이익(?)은 영국 무역수지의 과반을 넘어섰다.

 

델리에서 암살을 피해 도망친 황제를 꼬드겨 자신들 영토로 데려온 동인도 회사는 황제의 권한을 이용해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의 세금을 자신들이 걷을 수 있게 한다. 고작 주식회사가 처음으로 제국주의 형태를 모방한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거대 주식회사가 국회를 매수하고 행정부를 자신들 꼭두각시로 채워 넣으면 가능한 최고의 범법적 이익 추구 행태의 전형을 이 "동인도 회사"라고 본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구글, 페이스북이 자신이 직접 조직한 군대를 이끌고 외국에서 세금을 직접 징수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삼각주에서 석유 채굴 반대하는 주민들을 학살하고, 식량자원을 국유화하려는 민정정부를 몰아내려 쿠데타 지원하는 일은 뒤에서 능히 해낼 것이다. 동인도 회사는 거리낌 없는 제국적 면모를 보였다면 지금은 익숙한 잡음 같은 비명 사이에 숨어 몰래 일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계속 별정군대처럼 소개되는 세포이는 결국 영국 군대에 의해 길러진 영국 회사를 위해 싸우는 인도 출신의 군대다. 최신예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유니폼을 입어도 이들은 동인도회사의 어느 직급에 속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병정이다. 나중에 인도 군주들과 싸울 때 이 세포 이들은 큰 활약을 했고 결국 군주들도 프랑스 군대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세포이를 만든다. 왜 자신들끼리 찌르게 만드는지 이해시키는데 돈이 그렇게 쉽사리 먹혔을 리 없단 생각도 든다.

 

결국 무굴 제국이 허물어진 그 시점, 죽음만큼이나 절박한 개개인이 기댈 곳 없는 곳에서 공동체는 희생되지만 동인도 기업같은 자본 결집된 우두머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동인도 회사의 설립 50년 즈음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델리가 드디어 동인도 회사에 점령되었단 소식을 듣고 동인도 회사 마지막 장관이었던 웰슬리는 축배를 들며 "인도의 시체"를 기념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게 독자적인 힘을 과시하는 거대 주식회사의 본능인가? 인간의 본능인가? 인도 대륙을 완전히 휘갈키고 지나간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비극 아래에서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