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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Hidden Valley Road, 2020> 갤빈가의 비극

"정신병이 정말 잘못된 육아 때문이라면, 우린 정말, 정말로 큰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조현병을 가족병력이 아니라, 엄마가 어린 시절 잘 대해주지 못해 생기는 것이란 예전 학계의 입장에 대해 어떤 한 정신과 의가 던진 말이다.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볼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그보다 더 증거도 없는 육아 탓을 하는 것은 그냥 자신의 여성 혐오적 편견만 들어낸 것 아닌가? 자녀가 어느 순간 잘못되어 가는 듯하면, 그 부모는 타들어가는 마음일 텐데, 이런 말을 들으면 그게 무슨 억하심정일까?

하물며 한 명도 아닌 12남매 중 6남매가 조현병을 진단받은 집안이 있으니, 그게 <히든 밸리 로드>에서 소개되는 갤빈가 이야기다. 

 

1945년에 결혼한 갤빈 부부는 차례대로 12명을 낳았는데, 그렇게 넉넉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닌 중산층에 속했다. 물론 2층 침대를 4개 놓는가 하면 지하실도 방으로 쓰는 게 정상적인 가정이라 볼 순 없겠고 형제끼리 다투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 없음을 감안했을 때 감히 집안 분위기, 그 억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사는 개개인이 정신병이 오지 않곤 힘들었겠다고 믿을수도 있겠다. 

 

물론 이것도 환경적 요인만 보고 판단한 결과다. 형제자매가 많은 가족이 꼭 불행하다고 볼 수 없고 그 궁핍의 결과가 정신병으로 이어진다는 건 과학적 사실로서도 부합하지만 결국 피해자와 그 가족 탓을 한다는 점에서 선택지에 있어선 안된다. 마치 앞에서 언급된 양육 탓을 하는 의사처럼 말이다. 

 

정신병이란 건, 사랑하는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바로 눈앞서 목도하는 비극이기도 하지만, 마치 그 비극 자체는 전주였던 것처럼 파생한 또 다른 비극이 가족 한 사람씩 천천히 감정적으로 집어삼키기에 이른다. 이를 테면 다른 남매들도 조현병에 걸린 형제 같은 결말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살며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딸들은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오빠들이 폭력적으로 난동을 부릴 때마다 안방을 잠그고 옷장에 들어가 숨어야 하는 난리를 수없이 겪는 것뿐만 아니라, 둘째 오빠가 그 혼란을 틈타 자기 밑에 들어온 여동생들을 강제 추행하기에 이른다.  

 

시설에 입원하거나, 약을 먹는 게 도움이 안 되는 걸까? 수없이 병원을 들락거리고 더 효능 있다고 여겨지는 약을 먹지만, 나아졌다고 보단 "억제"시켰다고 말하는 게 나을 법한 수준이고 심지어 거기서 딸려오는 부작용도 장기 복용 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 유전적 요인을 찾아내서 해당 부분만 집중 치료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갤빈가가 혈액 샘플과 진단 기록 등을 연구자들에게 공유하며 세상에 기여한 부분이다. 

 

조현병은 프로이트의 꿈이 현실과 구별되지 못한다는 완전히 이론적인 출발을 시작으로 유전적 요인이 원인 같다는 이론이 우세해지다가, 나중엔 2차 세계 대전 뒤 우생학처럼 생태적인 배경 탓을 하는 이론과 함께 잠시 뒤안길로 가고, 정신병은 고쳐지지 않는 무엇이 아닌 단지 환자에 맞춘 관심과 오랜 인내가 필요한 것이란 이론이 우세해지고, 엉뚱하게도 여기서 "부모의 잘못된 양육 책임"이 나오게 되지만, 나중엔 결국 발달한 진단 기술 및 유전자 해독 등을 기반으로 유전적 요인으로 보는 급전개가 반복된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달 시점으로 보자면 급전개겠지만, 갤빈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미 6명은 조현병이 극으로 치달은 상태고 심지어 그중 2명은 약의 부작용인 협심증으로 사망했다. 신경전달물질을 기반으로 한 조기 예방제가 나오고, 갤빈 가도 포함된 조현병을 겪는 가족들의 유전자 샘플을 기반으로 한 조현병을 특수 질환이 아닌 스펙트럼 보는 인식의 전환도 이뤄지고 있지만, 갤빈가의 막내인 린제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이 것이다, '오빠들이 지금처럼 과거에 인간적으로 대우받았다면, 그래도 과연 병에 걸렸을까?' 

 

물론 자녀를 12명 낳을 만큼의 무모함이라면 자녀 개개인에 그런 인간적인 치료를 부모가 과연 필요성을 느꼈을지부터 회의적이다. 하지만 2020년 판데믹 와 중에 3월에 들렸던 정신병원에서의 집단 감염 및 사망 소식은 우리나라 사회가 정신질환을 대하는 태도가 45년부터 나아진 게 과연 있는지, 애써 질병의 본질은 외면하려 하지만 그래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녀를 사랑하며 돌봤던 갤빈가를 무책임하다며 나무랄 자격이 있을지 궁금하다.  

 

시간이 지나 병의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몇 개의 유전자, 사회적 요인으로 귀결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람 사이에서 살 것이고 그 어떤 과학적 결론도 그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 관계만큼 복잡하진 못할 것이다. 갤빈가 12명 중에 누구는 가족에 질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가 하면, 린제이처럼 가족에게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졌던 행운들을 되갚아 주고 스스로 가족을 돌보며 적어도 후회 없이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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