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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모든 것의 종말 (천문학적 의미) <The end of everything (astrophysically speaking)>

세상이 시작이 빅뱅이란 게 학계 정설로 굳어진 지금, 그렇다면 세상이 끝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끝날까? 아니면 이 세상에 끝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과거를 보고 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진 않지만 하나의 답을 쫒는 과정이고, 미래란 것은 제한된 단서만으로 한정된 추측만을 허락한다. 그것도 굉장히 드넓은 장소에 대한 짧은 지식만으로 판단해야 한다면 사실 마구 무작위로 꼽는 것만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거의 모든 인류문명에서 주술의 힘에 혹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의 보는 눈은 빅뱅같은 태초의 불을 볼 정도로 발달했고, 지금은 블랙홀끼리 병합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이젠 어느 정도 세상의 종말을 예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류의 종말은 지금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더라도) 분명 시작이 있었으니까 끝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의 종말> 저자는 예견된 우주의 종말로 크게 네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Big Crunch, 그러니까 태초에 우주 팽창을 가속했던 빅뱅의 힘이 점점 우주의 물질의 중력에 이끌려 약해질 것이고, 종국에는 팽창을 끝내고 다시 중심으로 회귀할 것이란 이론이다. 언뜻 듣기론 가장 그럴듯한 것이, 공을 높이 던지면 최고점을 찍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팽창은 끝이 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이 이론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발달된 우주망원경 측정 결과를 이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Heat death, <열죽음>은 두 번째 시나리오다.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이 20세기 초 관측 한 바에 따르면 멀리 위치한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은 앞에 말한 팽창 속도가 줄어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였다, 결국 줄어들긴커녕 우주는 예전보다 더 빨리 팽창하고 있고, 이것이 영원한 우주를 약속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서로 멀어지는 은하는 나중에 가선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나중엔 서로 빛이 닿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눈에 보이는 우리 은하계 밖의 별들은 하늘에서 사라지고, 종국엔 우리 은하계 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독립된 은하계는 독립된 엔트로피를 유지하고, 이 건 항상 높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쉽게 말하면 별들이 모두 증발하고 심지어 블랙홀도 호킹 복사에 따라 모두 증발해서 남아나지 않고 입자들이 모두 잘게 분해되어 서로 낮은 엔트로피만을 유지하면서, 아무런 활동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때가 올 것이고 그것을 <열 죽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른 예견된 죽음(?) 보다 훨씬 오랜 시간 소요되긴 하지만 가장 끔찍하다고 할수 있다. 이 상태에 이르러서, 다음 시작이 있을 수 있을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매 순간 그럴 확률이 있다지만, 글쎄, 종말론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다. 

 

만약 관측 결과 우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팽창하고 있다면? 우리가 팽창의 근원으로 보는 암흑 에너지가 늘어나는 우주공간의 몇 제곱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는 거라면? 천문학적으로 봐도 너무 오랜 시간 걸리는 <열 죽음>과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 경우엔 공간에 따라 압력을 유지하는 법칙이 전혀 다른 식으로 작용한다. 이것을 Big rip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엔 팽창하는 힘을 기존의 물리법칙이 이기지 못하고 전부 찢겨 나간다. 처음엔 은하끼리 서로 떨어져 나가고, 나중엔 태양계에서 분해되다가 나중엔 행성 자체, 결국엔 거기 속한 조그만 입자들 까지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개인적으론 이런 광경이 행성의 하늘에서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긴 하다. 

Big rip인지 Heat death 인지는 먼 은하에서 일어나는 초신성 폭발을 측정해서 그 은하가 얼마나 빨리 멀어지는지 지속적으로 측정하거나, 아니면 우주배경복사를 좀 더 면밀하게 측정하는 방식으로, 우주가 얼마나 빨리 멀어지는지 (허블 상수) 측정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측정 결과도 서로 다르고 의견이 분분해서 조금 더 지켜봐야 된다고 한다. 

 

Vacuum decay, <진공 붕괴>는 현재 물리적 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믿어지는 힉스 입자의 에너지 상태가 사실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가정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LHC 입자 충돌기로 입자를 여러번 충돌시켜가며 얻어낸 결과 얻어낸 (기본 입자로 불리는) 힉스 보손의 에너지 상태가 다양한 것에서 기원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입자들이 불안한 상태라면? 어떤 큰 에너지가 발현하는 천문학적 이벤트 결과에 따라, 어떤 힉스 입자가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상태로 전환할지 모르고 이것은 도미노처럼 주변 모든 공간의 물리적 원리를 뒤바꿔 놓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새로운 힉스 입자는 우리가 아는 중력, 전자기력 따위를 무시할 것이란 얘기다. 

이런 공포심 때문이지 2008년 LHC에서 새로운 가속기로 실험을 진행 할려고 할 때, 미국의 누군가가 이 실험 결과로 블랙홀이 생기거나, 새로운 입자가 생겨서 세상을 집어삼킬지 모른다고 법정 소송을 냈다고 한다. 굳이 이 사람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때 즈음의 농담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정작 우주에서 쏟아지는 우주선들은 우리가 입자가속기로 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더 오랫동안 진공 속에 퍼부어지고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이지, 진공 붕괴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중력이 다른 물리적 힘에 비해 너무나 힘이 약한것에 근거해서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 그 차원이 다시 우리가 사는 우주의 차원과 충돌하면 그게 빅뱅이 아니냔 이론도 있는데, 솔직히 굉장히 어렵다. 어려운 게 이론인 것도 있겠지만 공상에서도 공유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런 건 아닌 것 같다.

 

지금 판데믹이나 지구 온난화 같은 것만 생각해도 복잡한 현실에서, 인류가 세상의 끝을 연구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식으로 보자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딱히 원대하게 생각한 게 아니겠지만 우주가 어떻게 될지 가늠해보고 증명해보려고 하는 것은 항상 우리를 과학적 진실에 가깝게 한다, 비록 이 그것이 종말이라도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태어난 우주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여러 종말론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지만 그가 인터뷰한 교수의 말처럼, "인류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이로 인해 변하지 않느냐"데 이것이 우리가 딱히 이윤동기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