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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를 읽으면서 (1)

몇일전 전자책으로 구매한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읽으면서 최근의 상황에 대해 겹쳐 보이는 여러 문장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18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출현에서 내가 알고 있던건 제임스 와트의 '기계 혁명'으로 일어난 일련의 발전상이 대부분 이었고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상은 -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무산계급의 불이익 - 짐작 만 했을뿐이다. 나의 통념을 깨트린 몇가지 예를 들어볼까?

1. 종교 개혁은 교회의 부패에 따른 변화다.
    -> 종교 개혁은 교회의 이권을 중간계급(상인들)에게 돌리기 위한 것이다.

'면죄부'라고 이름 붙여진 부적을 파는 교회의 이야기는 세계사 책에서도 심심찮게 볼수 있다. 그들이 면죄부를 판 이유는? 중간계급들이 유럽의 신흥도시에서 시장을 이끌어 가고 전에 볼수 없을 정도로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교회는 더이상 토지만을 가지고 받는 소작료와 그 외 십일조를 받아 먹어가며 사는 정도로는 자기 욕심을 채울수 가 없었다. 그래서 면죄부를 발행해서 겁나게 뿌려재끼고 - 게다가 면죄부는 통화가 아니므로 마구 써재껴도 상관없다 - 이에 따라 하층민들의 불만이 거세져 결국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 개혁'으로 나타났다..
이게 우리가 아는 이야기이고..

의외로 루터는 굉장히 지저분 했다. 그가 실제로 농민반란이 일어난 지역의 귀족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폭도를 죽이는 사람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할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비밀리에 또는 공공연히 때려 죽이고, 목졸라 죽이고, 찔러 죽여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투쟁에서 죽는다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축복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보다 숭고하게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p137>

거의 억소리 날 정도의 귀족 편향이다. 이런 사람이 종교 개혁 입안자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책에서 설명해주듯 그가 다른 종교개혁가들과 다르게 성공할수 있던 그 비결이 저 편지안의 그의 처세술이라 할수 있겠다.
결국 반박을 날려가며 그가 부르짖던 교회의 개혁 가치 뒤에는 교회가 가진 토지와 재물을 귀족과 상인들에게 돌리기 위한 하나의 '임무' 라고 볼수 있겠다. '교회가 더러워서'는 맞지만 그것만 가지고 싸운 사람들은 항상 더 나은 사회를 바꾸려다 기득권에 철퇴를 맞았다는 것으로 보아 루터의 종교개혁의 이유는  '교회가 더럽고 교회가 가진걸 노린 놈이 많아서' 라고 해야 맞겠다.

2. 애덤 스미스의 자본론은 자본가를 위한 성서이다.
    -> 자본론은 중상주의로 대표되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한 항거일 뿐이다.

요즘에도 여러 사람이 시장경제 원리에 정부는 무개입이 좋다고 할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정말 그는 정부의 무개입이 부강한 국가의 원천이 된다고 믿었던 걸까?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한 문단에서 이게 칼 맑스가 쓴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애덤 스미스 본인이 쓴것인지 햇갈릴 정도의 문구를 보았다.

"시민 정부는 그것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인 한 실제는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자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있는것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p317>

시장주의자들은 절대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 구문이다. 해석한다 해도, 그것이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곡해만 반복한다. 애덤 스미스가 환생해서 지금 세계를 돌아다닌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경제가 미약한 국가에 개방을 강요하며 등쳐먹는 습관이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있는 곳이라면 - 이 말은 세련되게 바꾼 것이고 실제로는 짜를 놈 고르는데 지장 없다는 뜻 - 전 세계 가릴 것 없이 싸구려 임금을 주도해 오는 그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할 때 애덤 스미스의 저 윗구절을 떠올리기나 했을까? 이런 놈들은 보이는 손으로 좀 맞아야 한다.

3. 자본은 근면절약 정신을 강조하는 서양의 사상이 원천이다.
   -> 자본은 남의 피를 빨아먹으며 커갔다.

요즘의 남의 피를 빨아먹는 다는게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내가 기업에 들어가 체불임금 받으며 일하다가 사장이 증거될만한 서류는 다 챙겨서 해외로 뜨면 그게 피를 빤것이며
적금 하나 들어 매달 불입하며 집 한채 떠오르며 벙실벙실 쳐웃다가 뱅크런 나서 공중분해 되면 그것도 피가 빨린 것.
그런데 이런게 아니다.
정말로 그들은 피를 빨아먹었다.
개방된 문화의 나라로 유명한 네덜란드는 서인도 회사 건립후 '근면절약' 정신으로 무엇을 했을까?
칼 맑스가 든 '실례' 다.

".... 네덜란드 인들은 말라카를 확보하기 위해 포르투칼 총독을 매수했다. 1641년 총독은 네덜란드인들을 말라카에 들였다. 네덜란드인들은 그 즉시 총독의 저택으로 서둘러 몰려가서 총독이[자기 조국에] 반역한 대가인 21만 875파운드를 주지 '않기' 위해 그를 암살했다....
네덜란드인이 발을 들여놓은 곳마다 파괴와 학살이 뒤따랐다.
1750년에 자바의 바뉴왕기 주(州)에는 8만명 이상의 주민이 있었는데 1811년에는 겨우 1만 8000명 밖에 안남았다. 얼마나 달콤한 상업인가! " <인용: 자본론, 칼 맑스 p777> -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p267>

그건 정말 달콤한 상업이었다. 왜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을까? 원천적으로 그들이 폭력적이었을까? 물론 그점을 부인할순 없겠지만 적어도 더 '자본가'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살게하는 데 충족할 만한 토지와 노동력을 몰살하고 난 다음에는 적어도 '시장 개방'의 호불호는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겠다. 더불어 여기서 못살겠다 하는 놈들을 싼 값에 국내로 들여와 뭐같이 굴려먹으면 이 얼마나 달콤한 상업이란 말인가.. 정말 슬프게도 달콤하다. 그러나 더 잔인한 것은 전 세계가 지켜본-  몇 나라에선 '애써' 잊혀진 - 이 같은 만행은 세어보지도 못할 만큼 많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1930년대에 저술했다. - 이건 교보문고 책 서평을 읽다가 알게된 사실이다 -.
21세기가 넘어간 지금까지 책의 생명력이 있는건 그만큼의 재미도 있을 뿐더러 자본에 대해 다른 관점을 시사하게 되는 유익함도 있기 때문이다.
이책을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은 몇 있다. 아직도 개발 지상주의 시대에 매료되어 자본가를 찬양하시는 분들,
국부론이 나온 배경적 지식을 원하는 분들이 대표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