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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23:09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영공을 날아다니며 목표물을 공격해대는 UAV에 대한 뉴스는 이제 매우 익숙하다. 강대국들은 언론에서 말한대로, 그런 살상무기들이 날아다니며 활개치는 것을 나름 국가보안에 합당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이면 폭력의 지역 차별적인 실현, 즉 본국에선 상상도 못할 짓을 지구 어디에선가 저지르는게 가능한 그 이유는 바로 그곳이 "유권자의 밭"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이기 때문이 분명하다. 아무도 LA 상공에서 헬파이어와 기총으로 무장하며 범죄자를 감시한다는 UAV를 원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그 분명한 폭력의 존재감이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로보캅>은 이런 미국의 이면적인 현실을 투영한다. 다른 나라 전쟁지역에는 전투병 역할을 하는 로봇을 대규모로 파병한다. 기술적 결함이던, 의도적이건 어린 아이까지 죽이는 사건이 벌어져도 언론에 의해 흔히있는 사건으로 치부될 뿐이다. 다만 로봇의 생산 수요를 늘리고자 국내 경찰력까지 로봇으로 교체하려는 시장의 시도가 이어진다. 


외국에서 잘 만 싸우던 로봇들에 대해 똑같이 본토 안에서 활용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인간성"의 함몰을 근거로 한 로봇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여론이 조성된다 ("Robophobia").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효과적인 폭력의 수단이 자신의 곁에 존재한다는 소식은, 자신의 안전을 지킨다는 믿음보다 자신의 안전을 해칠거라는 위협으로 더 현실감있게 그려진다. 이런 공포 여론을 개선시킬 획기적 수단이 기존 폭력수단보다 더 인간답게 보이고, 또 그렇게 행동하는 <로보캅>이다. 영화는 인간의 탈을 쓴 폭력을 가공하도록 만드는 주체는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더 나은 종류의 수단을 쓰는 폭력 또한 폭력이다. 한쪽에선 폭탄부터 날리는 수단을 쓰더라도, 자기 쪽에선 전 국민을 감청, 감시하는 종류의 더 나은 수단을 쓴다. 아무리 세련되보이더라도 그건 더 나은 종류의 폭력임이 분명하다. 이런 감시에서 오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토로하면 흔한 국가 폭력 정당성의 키워드가 되풀이 된다. 이 것이 안보이며, 안보는 바로 애국이다. 더 나은 차별에 감사해야 하며 국가가 날 끔찍하게 죽이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로보캅>에겐 인간의 감성이 있다지만 그게 <로보캅>이 더 나은 종류의 병기임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자, 바로 그 끔찍한 안보 중심의 체제는 스스로 창조한 병기를 폐기하고자 한다. 결국 폭력의 차별성은 기실 거짓인 것이고, 그걸 부정하고자 자신들의 중요한 자산조차도 잠식시키는 자기모순인 것이다.


결국 로보캅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차별적인 폭력을 좀 더 현대화한 SF로 만든 영화인 것이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좀 더 심화되어 영화처럼 극적인 기술 형태로는 아니더라도 계속적으로 전 세계에 진행될 것이다. 다만 내가 좀 더 나은 수단의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 안도의 한숨이 되어야하는 것이지, 더 악질적인 것을 경험해야 하는 자들에 대한 동질감인지는 시대의 선택일 것이다.




로보캅 (2014)

RoboCop 
7.5
감독
조세 파디야
출연
조엘 키나만, 게리 올드만, 사무엘 L. 잭슨, 애비 코니쉬, 마이클 키튼
정보
액션 | 미국 | 117 분 | 201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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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22:53

멀지않았던 과거에 미국은 피부색이 백인이 아닌 다른 여타 인종들에게 무척이나 잔인한 나라였다. 그건 불과 한세대 이전도 안되는 시절 대중에 자연스러웠던 야만적 문화였고, 지금에서 전 인류가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믿는 일종의 중세와 같은 시절로 기억된다. 감히 그런 숨막히는 사회적 압박속에서도 그 시절상을 담담히 기록하는 문학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제임스 윌든 존슨의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은 남부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의 한 남자의 인생의 고백과도 같은 책이다. 그의 피부색의 어중간함은 스스로도 분명하게 의식치 못 할 정도로 백인과 흑인 경계선 사이에 있기때문에, 그의 인생 내내 자신이 어떤 인종인지에 대한 판단을 강요당하게 된다. 백인들의 사교 파티에 나가며 자신이 백인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던가 하던때도 있었다. 반면 백인 거부와 호화로운 여행을 하다가 어느날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스스로 미국 남부로 돌아가, 흑인문화 특유의 음악성을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유색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그의 모습은,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을 린치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목격한 후로 영영 감추고 만다. 그는 인간이 할수 없는 짓이라 여겼던 그 짓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하며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그처럼 다뤄질수 있는 인종이라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후로부턴 감히 유색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묻지 않았다. 이처럼 정치 과잉된 세상은 억압받는 모두에 투사가 되라는, 지독히 교시적인 훈시를 주지만 실제 개개인의 삶에서 그것의 실천은 비합리적이다. 세상은 감히 영웅이 되보려는 한발짝 조차 용서치 않으며, 편견의 무게는 혁명의 충격을 몇번이고 견뎌낼만큼 견고하다. 세상이 변하는 힘은 강산이 변하는 흐름과도 같아, 단숨이라기 보다 영원과도 같이 지속될 힘을 업고 나아가며, 이것은 물론 용기있는 자들의 발걸음에서 많은 동력을 얻음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규율도 아니며 하물며 강제도 아니다. 보통의 흑인이었던 그는 그의 피부의 경계선만큼 유색인으로서의 갈등은 항상 저만치 물러서서 바라보는 모호한 인생을 살아왔고, 때가 한참 지난 다음 그의 기억속에 자신에 대한 침묵을 지켰던 기억들을 담담한 죄의식 서린 고백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남자의 출중한 피아노 실력, 그리고 어렵지 않게 사회에 인정받는 행운을 누린 그는 마치 죄상을 읊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책을 지었다. 훌륭한 업적에 대한 회상을 적은 피상적인 인생의 회상도 아니고, 뼛속깊이 서린 증오도 아닌 것이다. 그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백인으로 거짓되어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던" 것을 고해성사한다. 훌륭한 흑인으로서 평등에 기여한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않음으로 충분히 세상과 갈등하지 않았다는 것에대해 다른 흑인과 동질의 인생이 아니었음을 알고있었다. 그 결론으로 물질적인 약간의 성공으로조차 보상받지 못하는 그런 정신적 갈등에 휩싸이는 것이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들, 우리가 외형적으로 바꾸고 속일수는 있어도 자신조차는 속이지 못하는 그런 류의 괴로움, 그것은 비단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만의 영혼속에만 있지는 않을 것 이다.


- 네이버 책에서 이 책을 알게 된 것인데, 정작 해당 기사 글은 찾을 수가 없네요, 혹시 아시는 분은 링크 좀 주시면.. ^^;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저자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백인의 얼굴을 가진 한 무명의 유색인이 그리는 '검은 미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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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19:02


북한의 "꽃파는 처녀, 피바다" 와 같은 대규모 연극공연, 대축전의 매스게임, 인민군의 무력행진 등이 "극장"안의 "공연"이 될때, 정작 관객은 누구인 것일까? 외세를 향한 메시지라기보다도, 참여하는 자 스스로가 관객이다. 그것은 김일성이란 권력자를 향한 몸짓이 아니라, 북한의 권력을 자신의 정신 세계로 인민들 스스로 구축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아보지도 않은 지금의 세대들을 끊임없이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과 깊은 공감대를 가지게 하고,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긍정적 감정은 곧 김일성-김정일 세습과정에 자연스런 역할을 한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세상에 뜨는 정치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극장국가란 것이 그것이다, 본래 경찰, 군대와 같은 폭력유지 수단의 점유가 국가라는 것이 막스베버의 이론이었으나, 인류학자인 게이츠는 "극장 국가"이론으로 국가란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기보다, 같은 신화를 공유하는 사회로 보았던 것이다. 

그 신화란 것이 북한에선 수령인 것이고 이것은 거의 유일한 희망과도 같다. 즉 북한은 국가라는 "극장"속에서 인민들에게 끊임없는 연극을 통한 세뇌로, 가족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수령님의 나라로 탈바꿈 한 것 이다. 그것이 그들이 경제적 굶주림 속에서도 선군주의에 전념할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경제적 욕구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도 어버이수령이란 이름의 존엄성은 그들 사이에 여전하다. <극장국가 북한>은 가장주의적 유교적 풍습이 사회주의와 결합하며 절대권력을 유지한 내부적 요인과 소련-중국의 수정주의를 무시하며 홀로 미국과 맞서고 있다는 과장된 역사인식이 이런 유일무이한 사회주의 권력세습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다만 극장국가란 개념을 통해 앞으로 있을 일들의 전망이 가능할까?  계속 이런 식의 세습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은 주변 국가에 안정적일 것인가? 


극장국가의 개념은 사실 일본에도 있었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필요했던 일본 유신정부가 그전까지 거의 무시당하던 천왕이란 존재를 "국부"수준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천왕이 신민들을 자주 방문하고 보살피는 등 여러 정치기술과 갖은 담화들로 미화시켜놓았던 것이 "극장국가"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 정치체제의 결말은 다들 아는 바와 같다. 항복이 합리적인 상황에서 천왕의 이름을 부르며 옥쇄하는 등 결말은 엄청난 파국이었다. 북한의 과잉된 정치행태의 끝이 이와 비슷하게 가고 있음이 무척 우려된다. 어찌보면 북한은 형용모순에 갖혀있다. 그들은 항일 빨치산의 정신을 기둥삼아 유격대국가가 되었으나, 정작 그들이 적으로 삼았던 일제와 무척이나 유사한 정치체계를 갖춘 셈 아닌가?




극장국가 북한

저자
권헌익, 정병호 지음
출판사
창비 | 2013-02-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북한,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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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17:29

"일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일 중독'임을 자처하던 이책의 저자는 현대에 들어서 더 복잡해진 노동시장을 밑바탕으로, 일자리의 의미를 심도깊게 분석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흥미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도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일하려는 그 밑바탕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이다. 요즘같이 제대로된 일자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시점에,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일자리"의 의미는 사람의 숨쉬는 것과 같은 삶의 필수조건이란 생각이 든다.


일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금전적인 목적이 가장 크다. 그러나 보물을 찾으려 심해를 뒤지다 전혀 다른 뜻밖의 생물을 찾게 되듯, 일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여러 부분을 느끼고, 또 여러 인간 군상을 마주치게 된다. 그런 상호 작용은 일자리가 단순히 월급 나오는 곳이 아닌, 자신의 자아가 인정받는 곳으로 거듭나게 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사람은 직장에 있을 때 가장 인정받게 되며, 자기 직업을 비추어 봄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인 "알 지니"는 현대사회에 들어서 일에 대한 "찬양"이 굉장히 과해졌다고 평가한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통해  부의 축적이 축복으로 전환되는 그 시점에서 산업사회, 자본주의가 맞물리며 열심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 일이 천하든 귀하든 간에 말이다. 이런 류의 노동윤리는 비록 대부분의 노동자의 마음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과도한 일중독, 무제한 경쟁같은 것들에 나름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런데 일에 잡혀 살면서도 그 사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든건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의 성격이었다. 성격이란 일의 직무가 아닌, 노동자가 결정에 참여할수 있느냐, 회사가 노동자를 존중해주냐의 여부였다. 요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부럽다고 회자되는 회사의 공통점들이 다 이렇지 않은가? 자신이 하찮은 부속품이 아닌, 어떤 일원으로써 당당하게 기여한다고 생각할 때 사람은 행복해지는 법이다.


책은 이 밖에도 고도의 자동화가 몰고 올 대규모 실업사태를 예견한다. 기계가 자기 일을 대신하게 된 블루 워커, 또는 일부 화이트 컬러 노동자들은 19세기 식의 망상처럼 “노동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대규모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세계화 추세에 따라, 낮은 기술력을 요하는 일들이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간 점, 또한 자동화 추세로 인한 실업보다는 경기의 오르내림이 일자리에 더 치명적이라는 점을 저자는 간과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산업사회의 팽창이 실업 인구를 부풀린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아질 줄 알았던 일자리 사정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현재의 벌이로는 예전만큼의 생활 수준을 누리지 못한다. 여성들도 사회에 많이 진출했지만 이른바 “유리 천장”에 막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런 암울한 일자리 미래에 해결책이 무엇인가, 저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자유시장에서의 폐해를 정부가 선순환 시키는 케인즈식 문제해결법이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제등을 통해 건강한 노동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측면에서 노동자가 적게 벌면, 적게 쓰기 때문에 악순환이 된다는 이론도 견지하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된 교황 바오로 2세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일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란 것은 개인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반대로 일자리를 잃는 다는 것은 경제적인 타격도 있겠지만, 그 개인의 가치가 송두리째 뿌리뽑히고 무시당하는 느낌이란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일할 권리”가 무시당하는 만큼 그 사회는 구성원들이 행복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일이란 무엇인가

저자
알 지니 지음
출판사
들녘 | 2007-01-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일'의 실체를 파악하여 우리 삶을 재해석한 책! 우리는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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