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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걱정/사회문화'에 해당되는 글 5건
2014.09.25 12:56

'인터넷 중독'은 언론의 총아에서 물러나 진지한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고도로 인터넷에 연결된 나라이고, 지나친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문제도 제일 많이 겪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교육,연구,현명한 공공정책으로 해결하려하는데, 어떤 노력에서도 굳이 '인터넷 중독'을 정신 장애로 선언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들도 이 훌륭한 모범을 따라야 할 것이다. -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p286


저자는 DSM이라 불리는 정신병 진단 기준 편람에 참여했던 의사로서, 현재의 모호한 진단 기준이 정신병의 진단 인플레이션을 불러왔으며, 이에 따른 향정신성 의약품 지나친 복용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위 인용문은 "행동 중독"이라는 DSM-5의 개정 추가된 정신병 진단 기준 자체의 모호성을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국의 예시를 들고 있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인터넷 중독" - 이하 게임 중독이라 부를수도 있는 - 을 실제 정신병으로 취급하여 많은 사람들이 향정신성 약품을 자기 입에 털어넣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착각한 것 처럼 그것은 어떠한 교육, 연구, 공공정책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해결책이란 것은 지극히 교조적이고 권위적이었으며, 당사자와의 어떠한 의사소통도 거치지 않았다. 


12시 이후 게임이 자동으로 끊기는 셧다운제가 그랬고, 최근 없어지긴 했지만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통제하겠다며 강제설치하게 했던 한 응용프로그램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저자가 지적했던 함부로 정신약을 처방하는 것-진단 인플레이션-과 같은 류의 실수다. 어떤 모호한 의학적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그것의 교차적인 확인, 그리고 실제 일상에 치명적인지에 대한 2차적인 소견, 그리고 그것이 집단상에 유의미한 숫자의 환자가 있을때 그것을 정신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 이것을 정신병으로 규정할 것이냐는 피곤한 논란을 우회하고 처방약인 향정신성 의약품을 대신 하여 여러 규제를 쉽게 설립한 것 뿐이다. 


이런 규제가 정말 여타 향정신성 의약품 처럼 적용되는 사람들에게 부작용이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은 해본걸까? 우리의 정책입안자들이란 사람들, 국회의원들은 1차 임상의라는 가운을 입고 매일 나라의 여러 임상학적 증상을 고민해 봐야하는 일종의 의사일지도 모른다. 자라나는 세대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차단은 신체,정신 자유상의 심각한 제한 아닌가? 그런 걸 너무나 당연하게 경험한 세대는 건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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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01:34
대한민국의 가장 보수적인 언론을 통틀어서 '조중동'이라고 부른다. 이 셋 언론사가 2007년 광우병 파동 때 PD수첩에게 충고 했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서 국민을 혼동에 빠트린 죄가 크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천안함이 침몰한 가운데, 이 셋 언론사는 어떤 기사를 내보내고 있을까?

조선일보 4월 23일



중앙일보 4월 24일



물론 이 언론사들이 항상 말했던 변명처럼 "공익을 위한 의혹제기" 정도로 봐줄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작 2년만에 그들이 주창하던 국민이 가져야 할 언론관을 이렇게 쉽게 내던져 버리는게 말이나 되는가. PD수첩에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 삼았다며 (이런 '반론'이 '사실'인지 조차 의문이지만) 기소, 재판까지 비난을 아끼지 않았던 그 태도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들 언론사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자칭 보수는 그렇게 태도변화가 잦은 건가?

사건의 경중을 따지자면 많은 장병이 숨진 천안함 사건에 좀 더 신중한 보도를 취하는게 마땅하다. 저런 무작정 추측보도들은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혼란을 덜 정도의 공익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보수라는 포지션을 버리고,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노출시키는 음모론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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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01:54
"대학거부자"에게 지지를 보내며.. - 박노자 글방

이번 자퇴하는 고려대 학생은 대학만 거부한게 아니다. 대학을 나와야만 얻을 수 있는 사회양식을 포기한 셈이다.
고졸출신이 대통령 해먹는다고 대놓고 윽박지르는게 대한민국이다. 이 판국에 99%의 사람들이 따르려고 노력하는 길을 벗어나는건 무슨 수작인가?

근데 따지고 보면 이런 류의 질문이 불편하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가 여러모로 꼬일 위기에 처해있는거 아닌가 싶다. 먹고 살만해야 따질 힘도 나는 거 아니겠냐 물을수도 있지만, 상아탑이니 뭐니 복잡한 단어를 쓰지말고 생각해보자.
유신독재를 밀어부친 대통령이 있는데도, 대부분은 먹고사는게 우선이니 진짜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는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대학생들이 주도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압박을 넣지 않았다면?
지금 이 정도 사회가 이루어졌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참가도 안했는데 이런말 하기 우습지만) 적어도 그때는 대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느끼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위기감에 대한 연대는 그냥 만들어 진게 아니라, '신체적 위기', '경제적 위기'를 감내하며 자신의 생각을 사회에 퍼뜨린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대학생이란건 누구나 안다.

지금 대학교는 어떤가? 물론 정치 민주주의는 상당부분 진전되었기에 전경과 맞서는 과격한 데모 전경은 잊혀진지 오래다. 근데 이판에 '경쟁'이라는 키워드가 화두로 등장한다.
'사회적 연대'를 통한 예전 정치독재와의 싸움 방식은, 살 건 많아지고 물건 값은 높아져만 가는 '반쯤' 참담한 자신의 처지에 잊혀졌다. 먼저 깨고 달려나가려는 생각이 너무도 달콤해서 아무도 '기업형 국가'에 맞서 싸울 생각을 안한다.
'그럼 네가 대학 만들어 보던가'같은 비난은 놓치는 게 있다. 지금은 예전과 주어만 다를 뿐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정치독재 였다면 지금은 경제독재 시대다. '재벌체제'와 같은게 주어가 되었다.
이들은 더 많은 임금, 보너스, 기득권로 유혹하며 실상 주어진 몇몇에게만 부를 주면서, 전체에게 이득이 되는 듯한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다.

이런 이유로 김예슬 학생처럼 누군가 적극적으로 지금 대학들의 태도와 맞서 싸우려는건 정말 좋은 시도다. 대학이 기업의 관문 역할만을 한다면 예전과 같은 변화를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끌 원동력을 갉아먹음과 동시에, 이런 과두 재벌체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대학이란게 고작  <매트릭스>에 들어가서 꿈만 꾸는 그런 사람을 만드는 거다. 앞서 링크한 박노자 교수의 글처럼, 대학생이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사회가 당연시 되는 역사적인 오류를 범하면 안되겟다.
지금은 대안이라고 나온게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변혁을 말하는 사람이 메뉴얼부터 들고오겠는가? 대학생이 자기주권 찾아갈 수 있도록 '등록금 인하', '학생 학교운영 참여'와 같은 정책들부터 시행되야 한다.

앞서 '졸업해버린' 대학생이 되었지만 일단 한 사람이 시작한 사회운동이 널리 퍼질수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있다. 김예슬 양이 밝힌 '대학거부'에 대한 이슈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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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6 01:40
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널리 알려서, 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위대한 나라임을 알리는 게 중요한가?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다. 첫째로 수출증가 효과 때문이다. 한국이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소개된다면 한국의 이미지에 호감을 가지게 되면서 동시에 한국 기업에서 만든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같이 상승하기 떄문에 삼성이나 LG같이 외국에 제조업 수출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국가분쟁에서의 우위권 차지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동해는 외국의 많은 표기에서 "일본해"로 표시되서 나와 불리한 입장이다. 이럴때 한국이란 나라를 널리 알려 국가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가만... 제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 사람에게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노키아가 어디 회사냐고.. (아마도 우리나라는 제외해야 될듯 하다.. 노키아 점유율이 세계 최하위니까..)
요즘엔 영화나 유머 소재, 또는 경제학 책에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핀란드 기업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예전만 해도 일본기업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중요한게, 아무도 그 기업이 어디서 온 기업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그렇다. 필립스는 또 어떤가? 중요한 건 해당 기업의 기술과 마케팅 실력 등 생산 능력을 최종 생산품에 얼마나 묻어나게 할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업이 해당한 국가의 이미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삼성과 LG같은 기업들이 한국의 이미지와 직접적인 연관성 보다, 기술-생산력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기업 자체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두번째로 생각해 볼 '동해'..
어쩌면 수많은 고문서를 통한 증거로 명백하다고 볼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서해가 있다면 중국의 동해가, 우리에게 동해가 있다면 일본또한 서해가 있다. 물론 영유권을 넘보는 제국주의적 야망까지 묻어가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명 하나를 두고 몇십년 가까이 애국심에 물들인 싸움으로 번져나가는 것은 정말 가망 없는 싸움이다. 지중해는 리비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 튀니지 등 몇 십개국에 둘러쌓여 있는데 각국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싸우는 경우는 없다. 특히 그리스의 크레타섬 남쪽으로 리비아 해역으로 이름이 정해져 있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물론 국가적 이미지가 달라져서 East Sea로 표기된다면 자랑스러울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해역에 Sea of Korea라고 쓰고 싶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를까.
논의가 좀 다르지만 이 처럼 국가적 이미지 상승을 통해서 국제분쟁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힘의 논리에서 옳기는 하지만 또다른 제국주의적 마인드의 덮어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정리해 보면, 쓸데없는 애국심에서 벗어나서 기업은 기술-생산에 따른 가치를 높이는 '알짜배기'기업 자체로 알려야 하며, 남에게 호소하여 자국의 이미지를 드높인 이후의 '외부효과'보다는 해당국과 담판을 짓는 진짜 외교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헛수고를 하지않고 원하는 결과를 충분히 얻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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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2 05:16

 연쇄살인범을 잡았다. 그 연쇄 살인범은 어떻게 되었든 기소절차를 밟게 되고 법정에서 형량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형무소에서 그 죄값을 치르게 된다. 이게 대부분 생각하는 법의 정의다. 그 벌을 부여하는데 사회에서 시민들로 구성된 자경단이 나설수 없으며 형법에 나온 형량보다  더 심한 구속력을 부여 할수 없는게 진리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조중동-대표적으로 중앙일보-은 범죄자의 사진과 이름을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공개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성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변 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인권을 무시한 범죄자에게 인권을 적용할수 있느냐’ 물론 그와 같이 연쇄살인은 인권을 무시한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런데 그 명제 자체만으로 그의 인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입장은 그 주장이 더 나아가지 않을거란 불확실한 전제를 담보로 한다. 정말 강력범죄에만 머물수 있는 주장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명목으로, 경제를 망치려했다는 죄목으로 심하게는 정권의 목아지를 쥐고 흔들었다는 죄목으로 그럴수도 있다.  과거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돌아보면-용의자에게 죄가 뒤집혀 졌다는 그 대목만 제외하면- 일반 강력 사건이 정권에 의해 어떻게 이용될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나치 지도자들은 이 의회 방화 사건이 코민테른의 행위로 밝혀졌다고 주장했으며, 범인으로 나중에 의회 방화 사건 재판으로 알려진 라이프치히 재판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될 1933년 3월 초에 체포된 3명의 남자를 내세웠다. 이들의 이름은 불가리아 공산주의자들인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바실 타네프, 블라고이 포포프였다. 사실 이들을 체포한 프로이센 경찰은 이 불가리아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체포했을 뿐으로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체포하고 나서야 그들이 코민테른의 중요한 인물들임을 알았다. 당시 디미트로프는 서유럽 코민테른 활동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센 경찰들이 그게 의도한 것이든 안한 것이든 파시즘의 적인 공산주의자들의 확산을 막는데 일조해 준 것이 분명하다. 헌데 내가 말하려 한건 한xx당이 이런 짓도 서슴치 않을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말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위와 같은 인권을 근 50년간 쌓아올려 민주화까지 이룩해 놓았으나 우리 스스로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움직임의 징조인 ‘범죄자 신상 공개’의 우려 때문이다. 20년 정도 짧은 세월의 민주화를 이루고 있는 한국이란 나라가 과연 위와 같은 일종의 ‘백스탭’을 밟는게 옳은 일인가?  후퇴하기는 쉬워도 다시 이룩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다른 관점으로, 우리가 저런 신상공개를 통해 범죄자를 알아냈다고 치자. 분명 그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으로의 접근은 피할수 없다. 같이 비난 받을수 있을거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누가 그들의 인권이 비난받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건가?  나는 범죄자가 형량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사회인으로서 재교육 받는거라 생각한다. - 물론 현실은 재교육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고통이지만- 따라서 형별을 부여하는 자체가 사회로서 부적격인 하나의 인권을 교육시키는 과정이라면 그 인권을 공개적으로 망신시키기 위해 나서는 행위는 재교육 과정 자체를 부인하는 거라고 보기에 부정한다. 보다 안전한 사회를 도출시키려면 악한 행위에 악으로 대응하기 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그걸 부정해야한다.  범죄자 신원공개하고 나면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결과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가? 내 생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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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현 | 2009.02.16 09:16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공감 한표 달고 싶어라!
bok | 2009.02.16 17:56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하핫! 고마워!! 믹시라도 달아놀까 그랬나?ㅋㅋ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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