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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여섯번째 대멸종

동물원에 가면 항상 있는 신기한 동물들은 서로 온 곳도 다르고 생김새도 매우 다르지만 종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가지는 정말 똑같다. 전부 멸종위기종이다. 그리고 양서류가 보관되어 있는 아쿠아리움 2층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양서류의 다양성이 보존되고 멸종되지 않도록 우리 동물원이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자연에 널렸던 종들이 겨우 동물원에서나 볼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인 셈인데 같은 인간이 동물원에서 몇마리 살려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게 참 아이러닉하지 않은가. 


"6번째 대멸종" 에 나오는 내용이 이런 것들이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5번의 대멸종이 있었지만 전부 통제불가능의 영역이었지만, 인간이란 특정한 종이 세상이 진행되는 방식을 바꾸니까 시작되고 있는게 6번째 대멸종의 서막이란 것이다. 


일화중에 큰바다쇠오리라고 펭귄처럼 생긴 새가 나오는데,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떠나는 뱃길 사이의 섬에 살았다고 한다. 이 새를 선원들이 식량으로 쓰겠다고 무작위로 잡다가 포획을 한지 체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했다고 한다. 이 당시가 다윈에서게 진화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당시였고, 다윈 스스로도 이 멸종을 목도하고도 한 종의 멸종이 한 종에 의해 이렇게 순식간에 조종될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진화가 당시에 그토록 혁명적인 개념이었다면, 다윈이 인간은 다른 종을 절멸할 수 있을 만큼 파괴적임을 지적하는 것 또한 파란을 일으켰을까? 레이철 카슨이 200년을 거슬로 올라가 "침묵의 봄"을 쓴 게 될줄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가 석유를 캐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고작 산업혁명에서 4세대가 지나기 전에 인간이 지구를 망가트렸다고 생각하는게 평소 내 생각이었지만,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이 다른 생명의 근거지를 파괴하기 시작한 건 거의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이미 정착해 있던 네안데르탈인도 몰아냈고, 북미와 호주에 많았던 거대 포유류들도 전부 멸종시켰다. 

그토록 공격적이고 혁신적인게 인간의 주요 성공 요인이라면, 앞서 일어났던 대멸종이 암시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화로 쌓아올린 것들이 극적인 사건 앞에선 오히려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덩치가 아무리커도 운석을 맞으면 아무 필요가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인간의 지성이 성공의 근본 원인이라면 지구 온난화가 그 시험장이다.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다른 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앞의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른 종을 멸종으로 내몰면서, 자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자르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합리적인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다른 대멸종에서 맞았던 비슷한 상황을 암시하는 것 같지 않은가? 집단으로 - 그리고 장기적으로 -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에게 진화 압력을 벗어나는 전례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