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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영화

더 로드 (2008)

이 영화가 보통의 재난영화이길 기대했다면 십중팔구 실망 할 것이다. 그만큼 전개가 굉장히 느리다. 일종의 기승전결을 느낄수 없다. 어떻게 인류의 종말이 시작되는지, 화려한 액션 장면이 나오며 끈끈한 가족애로 위기를 모면하는 헐리우드의 뻔한 영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쓰고보니 2012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뻔한 영화의 특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동저자인 맥카시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들의 특징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그 예다. 먼저 제작한 이 영화에서는 피가 난무하고 (번역 탓인지 모르겠지만) 난해한 말들이 너무 많았지만 다행히 '더 로드'는 그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는 상당히 축약되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와닿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삶을 끝내버림으로써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가운데 생명의 끈을 이어가려고 전전긍긍한다. 전 인류가 무너진 상황인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본능적인 부성애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된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 학자금을 모으고, 식사를 차려주는 정도의 적당한 사랑을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다. 급박한 상황에선 지 자식을 죽이는 것이 부성애다. 그 상황에선 가장 순수한 사랑인 것이다. 이웃사랑도 사치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음식물 나눠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야하며, 상대방을 절망적인 상황에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한다는게 지옥같은 현실에서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그래야만 아들이 사니까, 살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 믿으니까 그렇게 한다.
  그저 아들 살리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을 대비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락사'를 가르친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총을 항상 몸에 지녀야 하는데 이유는 '안락사'를 위해서란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등거리 생존방식'이다. 남을 먹는 식인행위을 가까이해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결과를 보려하지 않고, 너무 친절해져서 자신의 생존을 모두 빼앗기는 결과를 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혹독한 삶의 방식을 영화에 재현하면서, 현실에 너무 많은게 가리워져 있어서 복잡하게만 생각한 삶의 방식이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난다. <더 로드>의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삶의 교훈을 줄려는 뻔한 헐리우드 가족 영화가 아닌, 마치 내 삶을 거울로 보게 하는 그런 영화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 영화에 쓴 내용을 보았다면 충분히 느꼈을 수도 있는데, 반전도 없고 지독한 액션 또한 없다. 삶의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에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기제 따위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이 점은 포털 사이트 영화 평가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도 나는 많은 장면이 기억에 남기 때문인지, 가끔 이 영화에 나를 대입할 것 같다.
아버지역인 비고 모텐슨이 만난 길 거리의 사람들은, 식인행위를 하기위해 거리에서 총들고 다니는 사람들, 도상때문에 다리가 잘렸는데도 도적질 하는 놈들등, 절망에 찌들은 사람들이지만, 현실 사회에 있는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 인성의 다리가 잘렸고, 도적질을 해대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똑같은 갈림길에 매일 서있는 것과 같다. 그런 '인성의 장애'에 파묻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항상 깨우치게 해야 하는가. 영화 배경처럼 회색의 짙은 분위기인것 처럼 그런 질문이 썩 기분 좋지는 않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야 할 질문이고, 항상 어려운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