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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헨리 몰레이슨을 위하여

생물의 특정한 신체 역할이 궁금할 때, 어떻게 알아 내야할까. 제일 쉬운 방법은 그 부분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혹은 제거한 후 결여되는 기능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런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로 동물로 실험을 한다.

이 동물실험조자 고차원적인 뇌의 인지기능을 확인하는 실험에선 큰 어려움에 마주친다. 특히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듯한 세부적인 기억체계는 동물실험으론 절대 채워지지 않을 주제다.

그런데 뇌의 기억 부문에 혁명적인 발견을 하게 될 날이 오니, 그게 참 어이없게도 누군가의 큰 불행 덕분이다. 책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주인공격인 헨리는 이 기억이란 논리적 스키마에 해부학적 지식이 합쳐지게되는, 인류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을 겪게된다. 헨리 개인의 인생에선 너무나 큰 비극임에도 말이다.

그는 간질로 뇌속의 해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기억을 잃는다.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20초 정도 지나가면 모든 일을 새까맣게 잊어 버리는 것이다. 오롯이 현재진행형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20초가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프레임이라면 긴 삶을 사는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기억만 못할 뿐 나머지는 건강했던 헨리는 신경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실험군이었다. 이른바 서술기억과 비서술기억의 해부 구조에서의 명확한 구분도 이 때의 실험으로 이루어졌고, 단기기억, 장기기억에서 뇌의 유기적인 기능의 세부 분류가 가능했다. 저자가 45년 가까이 헨리를 돌보고 연구했으니, 그 사이 영상 진단 기술의 발달같은 흐름이 기억 연구와 그 발전 방향을 함께 하게 되면서 뇌 관련 연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헨리가 없었다면 기억의 메커니즘 구현에 아직도 애먹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은 세상에 큰 변화를 준 기여가 됬지만, 정작 그 중요성을 자신이 스스로 이해할 서술 능력은 앗아가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헨리의 추도식에서 읊은 그대로 헨리는 역설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말은 인상깊다.

신경과학에 대한 대중에 적합한 난이도의 문체와 차가울 것 같은 주제에서도 헨리라는 한 사람의 인생 일대기를 돌아보는 듯한 따뜻함이 보이는 책이다. 나의 H.M을 연구해보고프다.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

저자
수잰 코킨 지음
출판사
알마 | 2014-12-3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기이하고 비극적인 H.M.의 기억상실, 그리고 그가 선물한 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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