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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한국은 어떻게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나

내가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한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아담하다고 할 수준의 12층 아파트 2동짜리 였는데 엘레베이터를 탄 그 순간부터 이 곳은 뭔가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베란다 너머 보이는 넓은 전망, 좁은 공간을 최대한 펼쳐 놓은 듯한 평수,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분리된 공간.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아파트라는 것은 이렇게 현대성과 편안함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런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외국(정확히는 서구)에 나가 자신이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얘기한다면 아마 굉장히 수상히 여길것이 분명하다. 서구에서 시도된 아파트 단지들은 지금은 대부분 범죄의 온상과도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영화 <13구역>을 보면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잘 투영되어 나온다. 


<아파트 공화국> 책을 지은 발레리 블레조는 이런 한국과 프랑스의 대조적인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아파트단지의 흥행 정도를 두고 심도깊게 연구한 책이다. 아파트 내부의 한국 전통 생활상이 투영된 모습, 구성 세대원들의 조사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내가 정말 관심있게 본 것은 "한국은 어떻게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냐"라는 부분이었다. 


군사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마포아파트와 종암아파트 대단지 분양은 말 그대로  대박을 치게되고 그 이후론 고급형 아파트들이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여러곳에서 본격적으로 지어진다. 저자는 여기서 한국의 아파트 분양제도가 "공공"의 형식이 아닌 "소유"하는 제도로 대부분 진행된 점이 분양 시장의 가속화를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이 점에선 프랑스 혁명때부터 공공주택을 정부 차원에서 공급해 노동자 계층의 안정을 꽤하려는 역사가 있는 프랑스에 비해, 이제 막 국민임대 등을 통한 공공 형식이 보급되어 가며 한국에서 받아들여 지는 방식에 꽤 차이가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이후의 역사야 후술할 필요도 없다. 나라에서 국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판자촌을 강제로 뒤엎고 살던 사람을 내쫒으면서까지 아파트가 "난립"했다. 마치 그 길이 유일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길인 것처럼 프로파간다되었고, 좀 더 높게 짓고 넓은 용적율의 똑같은 건물이 뒤덮힌 서울은 이내 성냥갑이라 불리는 건축학 실패의 살아있는 예제가 되었다. 그렇게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주택보급율에서 속도전을 진행했는데 이 다음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유지보수가 더더욱 힘든 아파트 대단지들이 재건축 시한이 올수록, 그리고 그런 대단지가 유난히 많은 서울의 수명이 그만큼 짧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대가 특정짓는 가치가 낮은 아파트 특성상 입주민들이 재건축 할만한 경제적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동산 시장은 큰 경기 불황을 만나, 저자가 경고한 아파트를 특징 짓는 낮은 수명과 잦은 재건축이 상충되는 시점을 만나기는 매우 먼 시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들과, 똑같은 미적 기준으로 하향평준화 되버린 아파트 풍경 속에서 이를 헤쳐나갈 길이 과연 아파트 유형을 벗어난 다른 형태의 주택 대안은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책 속에서 크게 웃겻던 부분인데 한 번 발췌해 본다.


한번은 동료 도시기획자에게 서울의 도시 축약본을 보여주었더니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라고 했다. 바로 반포의 아파트단지 였다. -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