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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몇해전 솔제니친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을때, 나는 두가지 사실을 알수있었다.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는 것,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게된 그가 쓴 책인 <수용소군도>가 소련 체제를 뒤흔들만큼 충격을 줬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용소군도>는 소련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했지만,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소련내의 "불편한 진실"을 집중조명한다. 비밀경찰이 판치고 다니며 외국에 있는 사람조차 거리낌 없이 암살하던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가 이 책을 집필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분명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할것이며, 죽을 각오로 쓰지않았다면 이 기록이 나오지 못했으리라..


어떤 면에서 수용소군도는 기록도, 사건도 아니며 그저 역사가 되어버렸다. 단순하게 사건으로 잡기에는 수용소를 향하던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고 일정한 사건을 두고 폭발한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억압의 시스템이었다. 나찌가 일어나고서부터 패망하기까지 고작 10년도 안되는 사이의 학살극이었다면, 소련은 장장 50년을 넘나든다. 그래서 이 책에선 수용소로 향하는 그 과정을 "흐름"으로 은유한다. 50년, 이토록 긴 시간을 가지고 '사건'이라 할수 있을까? 죄가 있어서 잡아드는 것도 아니고, 위험인물도 아닌 그토록 평범한 소련인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는 이루 말할수 없다.


"노동자가 다스리는 나라"인 사회주의 국가는 혁명과정에서 독특한 법리해석을 관장하는 사고방식을 체득하고, 거기에 잔인한 폭력까지 결합하니 남은건 "독재자"라는 중앙통제다. 스탈린이 그 역할을 맡았다. 한명의 반동분자가 생길까봐 벌벌떨며 천명, 만명을 잡아들여 수용소에 처넣었고 그렇게 반혁명을 꺾었다며 자화자찬했다. 겁이 없어서 독재를 하는게 아니라 겁이 너무 많아서 독재를 하는 듯하다. 그 사법 시스템 또한 매우 독특하다. 법이 하나 더 생기면, 때마침 그 법을 위반한 자들 수천을 잡아들여 "10년형"을 선고한다. 어떻게 그 법이 그때 맞춰 생길 걸 알기라도 한듯 말이다. 


누군가의 사고를 막겠다는 것, 나에게 불편한 사고가 나올 여지조차 꺾어버리겠다는 독재의 꿈은 소련이 무너져버린 21세기 이편에서도 계속 꿈틀거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이미 생각의 자유를 국가의 안보라는 뭔가 확실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형사처벌할수 있는 법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의 막무가내 사법을 닮은 이 조항을 반대하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내에서조차 "돈의 자유"에 눌려버린 "개인의 자유"의 비명은 흡사 옛 소련 수용소에서 나오는 듯하다. 소련을 수용소군도로 만들어버린 이 미친 정신세계에 사회주의 시스템이 기여한바도 상당하겠지만, 흔히 역사에서 보듯 자본주의가 그 단점들을 희석시켜주는 체제로 볼수는 없다. 그 많던 자본주의하에서의 독재, 부패, 억압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이다.


어떤 체제가 더 우월한지에 대한 증명을 하는 것인가? 질문은 오히려 "왜 우리는 들고 일어서지 않았을까"하는 반성이다. 러시아의 인민들은 왜 들고일어서지 않고 조용히 짐을 싸 살아돌아오는 것조차 확신할수 없는 수용소행에 몸을 맡겼을까. 밤새 심문당하고 고문당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사 돌아보는 소극적인 자세에 대한 반성에 비쳐, 이젠 그런 야만적인 정치체제의 주인장들이 오히려 자기가 희생양인양 위장하는 꼴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수용소군도의 흐름은 계속 되었고 책의 말미처럼 진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순간에 소련은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 체제가 받길 거부하는 진실들, 그리고 진실을 마주할때의 태도 등에 비추어 볼때 매순간 국운을 결정짓는 것은 총칼이 아닌 오히려 그 국민에 대한 태도 아닐까?




수용소군도

저자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찐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수용소군도』. 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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