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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현생인류 탄생의 시작, <크로마뇽>

요번에 읽은 <크로마뇽>은 인간이 역사로 기술해놓지 못한, 몇만년전 태생인류 시절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다. 고고학에서 꽤 유명한 이 책의 저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현생인류 진화의 증거들을 따라,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한 장면을 읊듯 설명한다.

그저 구석기에 돌 깎아서 사냥하러 다니는 단순한 인간이 돌연변이로 지금 수준에 발전한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모든 능력이 동일했다. 그 능력은 인류멸종의 위기마다 뛰어난 혁신능력으로 발휘되어 다시끔 살아남은 것이다. 혁신은 사냥, 채집과 같은 인간 생활의 모든 것에 걸쳐 전반적으로 나타났다. 빙하기 시절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죽을 기워입고, 이를 만들기 위한 뼈로 만든 바늘의 출현, 사냥방식의 다양한 협동능력은 다른 종에겐 없는 인간의 축복인 셈이다.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크로마뇽이 끊임없이 펼쳤던 사냥이 인류를 전 대륙에 퍼지게 했다. 생김새가 언틋 비슷했지만 크로마뇽과 지능에서 큰 차이를 보였을 네안데르탈인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주쳤을지도 모를, 아니 거의 높은 확률로 그렇게 마주쳐 서로가 경계심을 갖추었을 현생인류 후보들 중, 오직 크로마뇽만이 살아남았다. 이런 생존경쟁의 기술에서 볼때, 책표지 부제의 "살아남은 현생인류에게서 무엇을 배울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언틋 "무한생존경쟁"등의 자본주의식 미사여구로 포장될 것 같으나, 오히려 저자는 고고학의 심오함 자체만을 책에서 얘기할 뿐이다. 


미트콘드리아 같은 분자적 증거로 현생인류 탄생의 증거와 이동자취를 발견하고, 과학범죄수사같은 끈질김으로 그들의 벽화의미를 해석하고, 그곳에 있었던 이유, 그리고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 나간다. 돌을 끼워맞춰가며 석기하나 만드는, 무한한 인내심만을 요구할 것같은 고고학이 알고보면 모든 과학을 동원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물론, 책에서도 고고학을 위한 인내심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있다. 하기사 그런걸 요구하지 않는 학문이 어디있겠냐만은..

우리가 고고학이 진부하고 재미없는, 심지어는 부동산 가치의 리스크(?)로 까지 여기게 된데는, 한국 세계사 교육방식이 문제인듯하다. 우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을 주관식 답안지에 써넣기 위해 기억했다. 그들이 빙하기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우리와의 생김새, 그들이 느꼈을 우리와의 차이와 대한 증거찾기에는 흥미를 거두었다. 심지어 석기시대 그림이 구석기인지 신석기인지 맞추어야 하는 점수에 대한 집착만이 남아, 인류기원의 역사가 그저 시험문제라는 쪽으로 퇴색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학문의 발전은 일반 대중의 관심에서 오고, 그런 관심은 이야기와 서사시에서 부터 출발한다. <크로마뇽>은 인류기원에 대한 역사적 서술이며 화려한 이야기다. 


책 중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기다란 식탁 한쪽끝에 학자를 데려다 놓고 그 옆에 그의 할아버지를 앉게 한다. 다시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앉는 방식으로 몇천세대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다른 한쪽끝에는 최초의 현생인류가 있을 것이다. 한쪽끝에서 다른 끝쪽으로 바로 말은 못 건너겠지만, 자신의 옆 할아버지에게로 이야기를 계속 건너가면 결국 모두가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역사에서 이런 연결고리는 어느 순간 끊어져있다. 어느 순간 희미해진 조상의 이미지는 그 시작점이 분명하지 않다. 그 위대한 시작점에서 우리가 새까맣게 잊고있던 그들의 화려한 동굴벽화를 마주쳤을 때 느끼는 심경은 바로 그런 뿌리를 찾았다는 느낌, 몇만년을 거스르는 이야기가 다시끔 자기 뿌리를 찾는 자손들에게 전해지는 황홀경이다. 라코스의 한 동굴벽화로 시작한 이 책에서, 그 끊어진 이야기를 다시 전해듣기를 추천한다





크로마뇽

저자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출판사
더숲 | 2012-05-24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최초의 현생인류, 크로마뇽인에 관한 모든 것!빙하기에서 살아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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