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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영국이 바다를 점령할수 있었던 이유, <해상시계>

몇년전 유럽에 잠시 머물때 발레를 본적이 있는데, 공연이 끝나고 알고보니 그 발레 주연이 강수진씨여서 꽤 놀란적이 있다. 사람들은 막상 볼 땐 중요한지 모르고 놓치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내 경우엔 영국에서 그리니치에 있는 <국립 해양박물관>을 구경할때 이런 일이 한번 더 있었다. 본초자오선으로 경도의 시작이자 정점으로 유명한 그리니치엔, 크로노미터의 시초인 해상시계 H-1, H-2, H-3, 및 H-4 가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계공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이 기계를 눈앞에 접했지만, 막상 까막눈인 나는 사람들이 모인 H-3 옆을 흔들리는 사진 한장으로 기념해놓고는 별 의미없이 지나간 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후회되는지!!)

그렇다면 이 시계가 왜 그렇게 유명한 것일까? 데이바 소벨이 다큐멘터리식 서사흐름대로 쓴 <해상시계>란 책은, 왜 이 시계들이 위대한지에 대하여 흥미있게 얘기해 준다.
예전 고대부터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항해를 해왔고 항해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해나 달, 또는 별의 위치를 보고 위도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경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데는 방법이 없었다. 배의 방향을 알아내고 속도를 측정해서 경도를 계산하는 방법, 나침반의 진북, 자북의 각의 차이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모두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한계는 장거리 항해나, 시야가 좋지않은 곳에서 암초에 부딪혀 선원전체의 목숨의 위협하는 수준이었기에, 경도를 "유의미하게" 측정하는 기술의 필요성은 배를 타고 오갈 일이 많아지는 1700년대에, 날이 갈수록 더 중대해졌다.

결국 영국은 대서양을 횡단하는데 경도상에 0.5도 상의 오차안에 들어올수있는 경도측정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상금을 제안한다. 이것이 유명한 <경도상>이다. 역사에 존재했던 엉뚱한 상상 중 하나였던 연금술이 화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에 발전을 일군 것처럼, 경도상 또한 천문학 및 기계공학에 영향을 미쳤다. <해상시계>는 이런 대부분의 과학적 발전에 대해 언급하지만, 제목에서 보이듯 대부분의 이야기는 "시계"다.

그런데 시계가 경도를 찾는데 어떻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가는 선원이다. 당신이 시계로 인천의 현지시간을 계속 유지할수 있다고 가정하고, 배를 타면서 해나 달을 이용해 배의 현지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치자. 배를 한참 몰고 나갔을때 현지 시각을 측정하니 오후 3시였고, 시계로 본 인천의 시각이 오후 6시라면, 지금 있는 위치가 인천의 서쪽 방향으로 3시간, 즉 서울에서 서쪽으로 경도 45도 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24시간 : 360도 = 1시간 : 15도)

이런 간단한 계산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그 시대의 기술력이었다. 당시는 회중시계를 이용했고, 배 위에서의 진동, 습기, 온도 등의 요소에서 오차를 적게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해상시계>의 주인공격인 존 해리슨은 이런 모든 우려를 넘어선 시계를 만든 위인이었다. 여러차례 장거리 항해에서도 오차가 거의 없는 시계를 만들었고, 결국 영국은 이 시계를 좀더 정밀하게 만들고 대량생산해 보급시켜 세계 최고의 항해술을 갖출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해상시계의 첫단추가 그리니치에 보관된 저 유명한 H-1 이란 것이다.
이런 기술을 갖춘 시계가 발전하는 동안에도, 천문학을 이용해 경도를 파악하려는 여러시도도 자연스레 발전해왔다. 목성의 위성 엄폐를 통해 경도를 측정하는 법, 달과 별, 태양의 거리 측정을 통한 월거법이 대표적이다. <해상시계>는 이런 여러 챕터에서 이런 과학발전의 경과 등을 소개하며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흥미를 돋군다. 예를 들면, 갈릴렐이가 해상에선 관측하기도 힘든 목성 위성 엄폐를 이용해 상을 받으려고 바득바득 우긴 일이나, 뢰머가 위성 엄폐을 관측하다가 빛의 속도를 측정하게 된 일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은 해상시계를 개발한 존 해리슨의 위인전 쯤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런 과학적 발전을 이끌게 된 동기의 원천을 독자의 마음 속에서 찾게 끔하는 "수필"같은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과학적인 디테일엔 무지할순 있으나, 이 책에 나오는 존 해리슨이나 메스컬린 목사처럼 서로가 가진 경도를 찾는 과학적, 기계적인 메소드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순 있다. 이 두 천재의 대립때문에 천문학과 기계학(정확히는 시계 공학)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것은 정말 소설에 버금가는 스토리다. 한동안 이 책처럼, 과학적 호기심을 "어른의 수준에서" 흥미롭게 유발시킬 수 있는 책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해상시계

저자
데이바 소벨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5-08-18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시리즈 제7권. 측정가능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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