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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다고 하던가?
경쟁에서 패한 국가는 저마다 그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역사에서 인과관계를 잘 학습해 미래에 적용시키면 -강대국은 못되더라도- 패배에서 오는 설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부터 '지금의 강대국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와 같은 연구가 항상 진행돼 왔는데, 최근 중국에서 '대국불기'와 같은 책 시리즈가 유행하는 것도 그런 대중의 관심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요즈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흥망은 '경제 패권'에 달려있으니까 지금의 강대국을 이루는 힘을 연구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경제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럼 일련의 경제사에 나오는 사료를 종합해 경제학으로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기반으로 정책을 만드는 건 누굴까?
(
달갑지는 않지만)정치인들이 한다고 대답하는 게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답이지만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경제를 열심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정치인들과 경제 관료들에게 계속 자문을 해주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정답일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 오르는 '왕도'를 배우기 위해서 직접 사료를 분석할 수도 있지만 부족한 인적자원 탓에 이런 일을 직접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결국 선진국의 우수한 경제학자들에게 정책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자문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사마리아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류가 생긴다. 우리는 역사가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다는 명제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자'는 어디 출신인가? 절대 다수가 '승자 국가'출신들이다. 개발도상국이 움직이는 방향을 조정해서 부자나라에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면,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또는 대부분은)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개발도상국이 자연스럽게 취해야 하는 포지션을 바꾸도록 만드는 '나쁜 의도'를 가질 수 있다.
'
주류 경제학자들'이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 다가간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도움을 가장하고 자신들의 의도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하준 교수의 책 제목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위 같은 의도를 가진 '주류 경제학자'들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주류 경제학에 대비되는 자신만의 이론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폭로' 가깝다. 자유 무역이 경제 개발에 도움이 되는지, 외국인 투자는 테레사 수녀만큼 선량하기만 한지, 민영화는 진정 좋기만 한 건지, 지적재산권,재정건전성,물가인상률,부패,민주주의 등 거의 모든 신자유주의의 핵심 키워드들을 꼬집으면서 통념을 하나하나 뒤집어 놓는다.

부자나라들이 신자유주의에 위배되는 경제 정책을 쓰고 나서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선택적 망각'은 어떻게 보면 승자 입장에서 당연한 권리처럼 보인다. 인기 많은 음식점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경쟁 업체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레시피와 같은 개념의 '성공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과 남의 자율을 훼손시켜가며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IMF-세계은행-WTO로 이루어진 '삼총사'는 정책을 권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권장한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97 IMF를 겪은 한국을 비롯해서 경제가 수렁에 빠져서 국제 금융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 그 반대 급부로 경제 정책을 자신들에게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예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선택권, 자율권과 굉장한 괴리를 나타내는데, 장하준 교수의 말대로 '선택권과 자율권을 그토록 선호하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어째서 개발도상국이 하겠다고 나설 때마다 당장 가난한 나라들의 자율적인 선택을 반대하느라 발벗고 나서는지 몹시 궁금할 따름이다.' (p331, 주석)

실제 어떤 경제이론이 옳지 않음이 명백할 때에도 대안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없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 국제 경제에서 '부자나라' '가난한 나라'간의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지만 이를 이루기 위한 국가간의 합의는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처럼 경제사에 진실을 알리는 행위는 (사회민주주의의 도입 같은) 대안을 위한 연구에 불을 당기고 신자유주의 기조에 변화를 요구하는 기류를 만들 것이다. 벌써 지난 역사에서 개발도상국의 자율권을 확립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책의 마지막 말처럼 '가난한 나라'에게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의 실천이기도 하다. 세계정세가 복잡하고 국제적인 분쟁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때에 그 근본적 이유인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도 있으며, '부자나라'가 과거에 무자비하게 착취해 이뤄놓은 부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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