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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상록/책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고 (2)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고 (1)에 이어..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어떤 종교관이나 대국 관을 벗어나서 이렇게 얇은 책으로 자본의 공통적인 특성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할 수만 있다면 행성도 합병할 텐데..!

예전 경영과 관련된 교양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 말 중 한미 FTA는 미국이 원하는 극대이윤과 한계이윤, 그리고 한국의 그것이 만나 교차하는 부분에서 이루어진다면 성공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때만 하더라도 모든 협상의 결말은 모든 토론의 끝이 서로의 공통된 뜻을 교환하고 나서 화목하게 끝나는 게 다행이듯 서로 이득을 얻는 부분을 찾고 계약을 맺음으로써 행복하게 끝난다고 믿었다. 거기 있던 수강생 100명 대다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설명하듯 그런 양자이득이 가능하다는 것이 중상주의를 깨트리는 주요한 이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두 국가의 몸집의 차이를 보았을 때, 미국경제의 소비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로 유명하고 한국은 그에 비하면 아직도 작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거대한 시장을 개척하면 수출 개발 주도형인 우리나라로서 상당한 이득이라고. 그래서 한미FTA를 꼭 추진해야 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득의 주체는 정확하지 않다. 누구를 위한 이득인가?

답은 자본가다. 무산계급까지 에둘러 표현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언급되는 18세기 이후의 신디케이트를 통한 거대기업의 담합은 국가의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WTO를 통한 세계 무역 시장 개방이거나 그보다 작은 개념으로 보더라도 시장 개방이라는 맥락은 똑 같은 FTA도 별 반 다를 것이 없다.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후의 강대국은 전부 식민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보통 전 역사책을 통틀어 그 야욕을 비판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 야욕은 이성의 힘으로 과거의 역사가 되어 잠들어 있을까? 그 야욕의 결정판이 세계화라는 탈을 쓰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후반부 들어 자본가가 남아도는 그 이윤에 안식하지 않고 계속 숨가쁘게 돌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심히 불편함을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단순히 내가 체감하기로는 설득력이 있다. 불변자본은 생산비와 임금비 등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의미하며 가변자본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윤을 말한다.

일반적인 시장에서 산업 사회 전체에서 불변자본은 일정한 상승을 계속한다. – 많은 사람들이 이 법칙의 증명이 어렵다고 한다. 나도 체감한다고는 했지만 어떻게 증명할지 난감한 게 사실이다. – 따라서 가만히 있으면 이윤율은 계속 하락하기 마련. 자본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맨  윗쪽의 그래프는 가변자본이 1500 500으로 33.3%의 이윤을 남기지만 몇 년 흐른 뒤인 아래쪽 그래프는 시장에서 가변자본은 1000으로 1000/4000, 이윤율이 25% 8%가량 하락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윤은 양으로만 따졌을 때 전보다 많이 남는다. 결국 매출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 직시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매출을 늘릴건가?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가 도출해낸 결론은 제국주의. 앞서 (1) 감상문에서 적었던 남인도회사의 정책이 발전된 결과랄까? 원산재 산지를 지배하여 생산의 위협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며 가엾은 식민지 신민들에게 호 불호를 묻지 않고 자국 기업의 공산품을 원 없이 판매한다. 이걸로 끝일까?


제국주의는 결국 하나 둘씩 격렬하게 저항하는 식민지들을 떠나 보내고 자본가들은 절망한다. 내수와 노동시장이 좋은 곳은 그나마 산다. – 정확히는 정책적 합의가 그나마이루어 지는 곳이라고 해야겠다 그렇지 않은 곳은? 파시즘이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 결의를 다지며(?) 국가의 안위를 약속하는 체제는 자본가의 예루살렘이다. 물론 자본가는 율법을 놓지 못하는 사제처럼 가끔씩 국가의 눈총에 시달려야 하나 자본가 입장에서 그는 여전히 행복하다.

 

1930년대에 이처럼 파시즘의 미래에 대한 태도 덕분에 전세계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 말하는 경제학책이 있나? – 나는 모른다.. – 그 자본주의 성격의 변태로 인해 키워진 파시즘이 어떻게 괴멸될 것 인가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전율이 올랐다. 많은 사람이 말하길 한국이 파시즘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하기에 그렇다. 이 책은 예언하는 책이 아니라 과거를 말해주는 책 임에 더욱 그렇다.

파시즘을 현 세계에서 자처하는 국가는 없다. 지난 날의 불명예가 말해주듯 국가적으로 패가망신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럼 앞에 말한 것처럼 신디케이트를 설립해 서로의 경쟁을 참작해오던 자본가들은 이제 무엇을 노려야 하나?

세계화로 좀 더 많은 수요를 가져야 하고 원산재가 싼 곳을 부리나케 찾아가 개방시켜야 한다.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국가에 유착해야만 한다. 달라진 게 있나? 달라진 것이라면 주어 일 뿐 동사는 아니다. 누구도 그 탐욕은 감퇴했다고 보장해줄 근거를 줄 수 없다. 혹시 그렇다면 자국민 이득을 위해 뛰어드는 기업정신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떤가? – 그 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 현 시점의 금융위기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런 결론은 어리석다. 뻔히 거품인걸 알면서도 막무가내 대출을 부추킨 미국 정부, 또 그에 앞장선 모기지 대출업체는 어떠한가? 더 많은 주주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군림을 선호하는 삼성의 누군가는 어떻게 말할 건가? 이면계약을 해놓고도 당당한 한화는? 더 이상 도둑놈은 국적이 따로 없다. 그냥 자본일 뿐이다.


그냥 쓰디쓴 말로만 끝내기 보단 결론을 내고 싶다.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난 그게 제대로 된 규제라고 생각한다. 전봇대로 대표되는 못나게 생긴 규제가 아닌 자본가의 타오르는 야욕을 제재할 수 있는 진짜 역할을 하는 울타리 같은 것 말이다. 아이켄그린은 한 기고에서 우리는 투자가의 욕심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욕심을 떠나서 적어도  그들이 미친 듯이 남을 물어뜯게 놔두는 상황을 억제 할 수 있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