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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7 16:10
<하얀 리본>,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의 팔에 완장처럼 차고 무조건 복종 할 것을 강요하는 도구다. 이 영화의 시점은 1차 대전이 발발하기 1년전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얀 리본>은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말도 안될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윤리를 아이들에게 강요토록 하는 일종의 억압도구다.

독일 옛날 시골 마을에선 순하기만 한 아이들이 자라날것 같지만, 현실의 무자비하게 잔인한 일들이 그들을 점점 <하얀 리본>의 상징과는 정반대로 자라나게 된다. 노동에 시달리던 부모가 끔찍한 사고,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차마 할수 없는 짓들을 당연하게 바라보며 자라나야 하는 그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의 소중함이며, 삶을 바람직하게 사는 방법들에 대한 것이란 헛똑똑이 같은 소리일수 밖에 없다.

머리에 뭐가 찼는지 알수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기하고픈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고, 아이들 머리속 세상은 자연스레 잔인한 것들로 가득채워진다. 그것을 두려워한 어른들은 애들 팔에 강제로 <하얀 리본>을 맨다. 이건은 절대선이다! 순수하게 밝은 의미의 하얀 리본이, 오히려 그간 저질러온 일들에 대해 면죄부가 된다. 이런 아이들이 저능아를 고문하고, 부잣집 아이를 성추행한다. 

영화의 주인공격인 교사는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한다. 목사의 자식들이 사실 그간 추한 짓들의 범인이며 더 이상 숨키지 말라고 목사에게 간언한다. 그런데 목사는 어떻게 하는가? 적반하장격으로 아이들을 보호한다. 너희들은 착하다 부모 명령을 잘 듣는다.. 그렇게 명령하던 선의 상징, 목사님께서 범죄 행태를 오히려 보호해준다. 그간 선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누가 누구에게 강요할수 없다는 관념적인 생각이 굳어진다. 엄격하다는 사람의 끝이 저렇게 더럽다니... 

어찌보면 요즘 돌아가는 꼴과 얼핏 비슷하지 않은가, 길거리 저렇게 허다한 키스방 안마방 모두 더럽게 추잡스런 산업이다. 아이들 등하교길이라고 이런 추세가 피하지 않는다. 밤에는 부모가 술쳐먹고 때리고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해도 우리 사법부는 잘해보라며 감형해준다. 성폭행 피의자들도 잘 '이해'해준다. 
이렇게 순수한 것을 파괴하는 행위에 잘도 동참하면서,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메도록 강요한다. 너희들은 깨끗해라! 공부해라! 가사에 술들어가는 것들 듣지말고, 게임은 12시까지만 해라... 현실에서의 더럽고 추잡함을 그대로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강요했다. 영화의 목사는 '우리들 모두'다. 

교사는 되려 교사직을 내놓고 싶냐며 협박하는 목사를 뒤로하고 나온다. 교사는 결혼도 잘 하고, 애도 키우며 잘 살지만 1차 대전, 2차 대전이 몰고온 불행이, 그의 삶을 집어삼켰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하얀 리본을 떼고나서도 분명, 그 잔임함을 잃지 않았을 것이며, 누군가의 삶을 다시 불행케 만들 것이다.

정말 강요로써 누군갈 순수한 생각을 가질수 있게 만들수 있단 생각은, 사실 누군갈 미치게 만들고 싶단 생각 쯔음에 가깝지 않나 싶다. 정말 애들이 착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하얀 리본같은 완장을 차게 하기 보단 이야길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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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3:19

인류가 산업혁명의 절정기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나름의 과학 발전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밑의 원동력엔 석유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에 들어가기 이전의 인류는 10억, 지금 2011년엔 70억으로 불어나 있다. 사실상 이런 규모의 인류를 먹여살릴 수 있는 이유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때문이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쓴 "장기비상시대"는, 이런 모든 산업의 원동력인 천연자원(주로 석유)이 고갈되어 간다는 명백한 증거제시와 함께 인류가 맞게 될 미래에 대해 전망한다. 앞에서 말한대로, 인류가 이만큼의 인류를 유지하는 모든 근본적인 산업의 가운데엔 화석연료가 기반으로 되어있다. 약제를 만들거나 옷을 입거나 하는 의식주의 모든 행태는 산업혁명 이전에도 존재해 왔지만 쉽게 채굴할 수 있던 석유가 이 모든 활동의 원가를 낮춰주고 대량생산을 가능하게끔 함에 따라 70억이라는 인구를 어떻게든 부양하게 해주었다.

 문제는 석유 시추같은 산업이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석유의 발견량은 점점 줄어들어가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석유를 뽑아쓰다보면 채산성이 지극히 낮게 된다고 한다. 즉 1배럴의 석유를 얻으려고 1배럴의 석유를 쓰게 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수준까지 오면 유가라는 걸 정하는 것이 무의미해 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실상 부족한 석유를 둘러싸고 국제 분쟁이 일어날 것이며 현재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는 강한 정치적 압력이 계급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을 염려하고 있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환상도 지적한다. 지금은 전세계가 태양광 산업에 열광하고 있지만,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패널을 제조하는데 드는 많은 석유와 엄청난 이산화탄소 배출은 유명하다. 이처럼 거대한 댐을 지어 전력을 유지하는 것, 또한 풍력발전기를 짓는 것등의 산업도 석유를 이용한 거대한 건설업-제조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기비상시대"는 대체에너지를 찾는 인류의 활동은 대부분 과학발전에 대한 공허한 믿음 뿐이며, 지금의 생활을 석유없이도 유지시키고 싶은 망상에 다름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뿐 아니라, 물리학의 "엔트로피" 개념으로 석유가 불러온 파국을 설명한다. 몇천만년 묵어 만들어진 지하자원을 단 몇백년 만에 소진함에 따라 인류는 지구상 유례없는 고 엔트로피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캐어도 캐어도 또 나오는 석유는 인류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믿음을 불어넣었고, 이 지속된 현상은 종이 증권에 해당하는 '돈'이란 것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다. 이 돈의 폭발적 증가 현상은 대공황과 최근의 몇차례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인류가 석유로 파티를 즐기던 화석연료 중독 시스템에 대한 경고였을 거라고 지적한다.

석유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 현상 자체가 지금 수준에선 상상이 안가겠지만, 석유가 더 이상 만족할만큼 나오지 않아 고 엔트로피 상태에서 어느 수준으로 하락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세상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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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23:28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유방암 치료를 받으며 지나친 긍정을 일삼는 환자들을 보게된다.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 암 세포가 활동하지 못한다면서 말이다. 흔히 '긍정적'인 좋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암 세포를 죽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수집된 과학적 근거가 잘못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오류는 넘겨짚더라도, 암 자체를 마치 "인생의 축복",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볼 때 '지나친 긍정'은 이미 종교와도 같은 같아보였다. 그 종교는 암 환자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통증이 세상을 더 밝게 볼수있는 영광스런 과정이라는며 말도안되는 교리를 가르친다. 누군가 암 치료과정 중 부정적인 생각을 내뱉으면, 이런 사람을 '이단'으로 다루어 자신으로부터 최대한 배격한다. 마치 어떤 행위를 하는 자를 악마처럼 취급하는 종교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 종교가 섬기는 것은 '긍정'이었다. 악마는 그 긍정을 조금이라도 위해하는 것들.

유방암같은 질병 분야에만 '긍정에 대한 믿음'이 침투한 것은 아니다. 긍정의 힘을 전파하고자 하는 '치료사'들은 자주 자신의 모습을 돌봐야 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영업사월들이 그 두번째 타자로 삼았다. 자신을 최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바꿀수록 더 많은 돈이 모여들거란 충고는 이들에게 적절해 보였다. 긍정 치료 분야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기업경영자들은, 이 '치료사'들을 초빙하여 자기 사원들에게 강의토록 시켰다. 엄청난 감원 스트레스에 짓눌린 사원들에게 긍정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은 흡사 "똥물 천지에서 자라나는 돼지에게 웃으면 행복해진다"며 가르치는 꼴이었다.

칼뱅주의는 노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혹독한 자기 비판의 의무를 지운다. 그 지독한 칼뱅주의를 벗어나고자 출발했던 이 "긍정주의"는 본의치 않게 자신들을 억압했던 칼뱅주의의 옷을 입게된다. "긍정하라, 불평하고 짜증내는 부정적인 자들을 멀리하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이 충만하도록 노력하라" 칼뱅의 노동 의무는 긍정으로 탈바꿈한다.
종교적 메시지로 구색을 갖추면 금새 퍼지게 되는 걸까? 본래 종교에서 벗어나고자 만들어진 긍정의 힘, <신과학>은 대형 교회로도 퍼지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며, 자기계발서 시장에도 "긍정"에 대한 분야가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긍정'이란 "항상 웃자" 정도가 아니다. 하느님과 기도할 때 "나는 차가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하면 하느님이 그 기대를 분명 들어주신다는 물직적(?)인 기도다. 또는 어떤 남자랑 살고 싶을 땐, 차고를 비워놓고 옷장을 반쯤 치워놓으면 그 남자가 절로 굴러들어온다는 식이다. 초특급 베트트셀러였던 "긍정의 힘", "시크릿"등의 자기계발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들로 페이지를 뺵빽이 채워놓았다. 아, 물론 '긍정' 또한 종교같은 것인 만큼, 기도를 대신할 구호와 매일 매시간 빼먹지말고 해야할 강령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것이 "긍정적"사고를 강제하기 위한 것임은 당연하다.

어떻게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고,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긍정의 힘이나 믿고 앉아 있을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책에서 이런 긍정주의가 정치, 경제에 너무 만연해 있어서 우리가 잘 아는 2008년 경제위기가 일어나는데도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의 기제는 그저 '예스맨"만 찾는 우리의 심성에 있다. 과학적인 추론을 이용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배치된다면 우린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긍정'이란 것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내 맘에 들면 '긍정적인 생각', 아니면 '부정적인 생각'..
 
영화 "예스맨"에서 짐 캐리가 "No"만 일삼는 부정적인 사람일 때, 그 표정이나 태도는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보는 일반적 통념을 말해준다. 다시 사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예스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위에 둘러싼 물리적, 경제적 위기에 둔감할 수 있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란 무조건 No라고 하는게 아니라, 의사결정시 일이 안 좋아질때를 고려하는 사람일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Yes하라는 긍정주의를 벗어던지고 나면, 긍정주의가 목표로 하던 마음의 안정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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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도서출판 부키 | 2011/10/20 22:45 | DEL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극찬!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은 뛰어난 사회평론가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미국과 유럽을 얼마나 모르는지 일깨워 준다. 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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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6 00:57
요즈음 가장 자본친화적인 공권력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붙이는 세상에, 더 기막힌 일들을 보니 그 관련 기사가 다음과 같다

어느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도크 사정이 여유로운 한진중공업의 영업 마진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며 조선업종 최선호주(톱픽)로 꼽고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는 내용이다.
“수주를 쉰 한진중공업이 수주를 재개한 지금은 그야말로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어서 “더 높은 마진의 물량으로 2012~2013년의 도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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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땀에 젖은 지폐 넣지 마세요 / 진중권

회사가 어렵다고 노동자를 자르는 것과 동시에 주가가 오른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기사를 내놓는 신문이나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해 거의 무한대의 믿음을 가지면서 이런 "저평가" 항목을 찾아 헤매는, 스스로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아무튼 진중권의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경영자들이 얼마전 경영성과로 보너스까지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개개인의 탓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럼 경영의 잘못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당연히 경영을 잘못한 임원이 그 책임을 져야하고,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전가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선 이런 정의가 잘 실현되지 않는다. 공정사회의 한 단면이 이렇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는 어떻게 규제해야 하나, 부당하게 해고를 일삼는 회사에 대한 주식매매를 금지시켜야 하나? 물론 그럴수 없다.  도덕적인 책임을 주식시장까지 가져가서 따지는 국가는 이제까지는 없다. 그럼 주식을 사고파는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도록 해야하나

문제는 자본주의 생태에 있다.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고정비용으로 두고서는 주가를 올릴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서 미래의 현금흐름을 늘려놔야 주가도 오르고 경영성과가 좋아지는 모양세다. 이런 아랫돌을 빼어 윗돌괴는 형식은 어떻게든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런 문제는 시스템 전체의 붕괴신호이기 때문에 별 해결 방법이 없다. 또다시 다른 희생양인 아랫돌을 하나 설정하는 방법밖엔 없다.

주주들도 회사의 공동체중 하나이지만 그 회사에서 일하는 임원, 노동자만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 할순 없다. 시장은 그들에게 떳떳하게 살라고 말하기 보단, 어떻게든 이익을 늘려보라고 주문할 개연성이 더 크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주식시장의 부정적 흐름을 깨고, 선순환 방식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방식을 따르는게 좋지않을까.
예를 들면 교도소 수감율로 교도소의 이익을 계산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교도소의 이익을 늘려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응용하여 한 회사의 투자자본 형식의 주식에서 벗어나, 소비자친화적인 함수와, 노동친화적 함수를 하나로 묶어 이익을 계산하는 주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종전처럼 경영자가 이뤄놓은 이익을 계산하기 위해 몇년이고 걸릴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친화적인 것을 두고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될 여지도 크다. 다시 말해서, 좀 더 인간적인 주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 사회가 가진 인간성의 회복이다. 남의 행복추구권을 앗아가지 않는게 인권의 하나라면, 주식시장도 한 노동자이자 국민인 한 사람의 행복을 무참히 밟을수도 있는 주식의 "잔인함"을 깨닫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노동자를 잘라 더 높은 이윤의 마진을 찾는 세상은, 언제고 그 마진 깊이만큼의 구렁텅이로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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