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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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전까지 국가 권력이 무한정 확대하려는 움직임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언론 권력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몇 주 전 뉴스에서 한창 전직 대통령 서거에 대해 추모 기사를 내보낼때, 집권 중이었을 때 그들이 악의적으로 내보낸 기사, 또 퇴임후에 비리 수사에 관련해서 추측성 보도를 마구 내보냈던 것들, 그런게 아직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뿐 자신들이 언론이라고 자부할만한 어떤 기조도 볼수가 없는 그 모습들.. 예전엔 전경, 군의 군홧발이 여론을 짓밟았지만 (요즘에도 가끔 그렇다고 한다) 이제 그런 권력은 국가보다도, 언론이라는 회사에 맡겨진 부분이 많다.

그를 죽인게 뭘까? 6월 4일자 미디어투데이 기고문에 읽고 생각해 봄직한게 올라왔다.
언론책임론 방향 잘못됬다 - 미디어투데이 6/4일자 기사

기고문에 약간 섬찟한 부분이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아무리 적은 액수의 돈이라도 이를 임기 중에 ‘잘 나가는’ 기업인으로부터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공적인 일이었고 편파적이거나 추측성일지라도 일부 부정확한 점이 있더라도 보도는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했다.
전체 글의 논지는 영장주의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이 남발되어, 피의자에 대한 인권 보장없이 마구 이루어지는 수사가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피의사실공표 받아쓰기 자체가 나쁘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언론의 책임을 넘어서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법적으로 따지지 못할지언정 언론이 할 도리는 아니다. 그들이 단순히 피의사실에만 근거를 둔체 이야기 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사실을 바탕으로 보았을때, 절대 그렇지 않다.

근 몇달간 조선일보 만평 - rushfor's rou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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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티스토리에 Flickr plu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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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의 야경
에슬링겐 성곽에서
08-05-25 152

딱 포토스트림의 인기사진 3개만 끌어와 봤습니다.
상당히 편리하니.. Flickr 1년 프로계정이 25달러라는데.. 생각좀 해봐야겠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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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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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어를 늘리고자 가끔 뉴욕타임스에 들어가 베스트 글 목록이라도 읽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오늘은 정말 특이한 글 하나 건진것 같다.

Defecting to faith (믿음으로의 전향)

글의 시작은 기자의 지인이 "종교는 그들이 종교를 믿도록 커왔기 때문에 가지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주입된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어쩐지 리차드 도킨스의 풍을 띈다. 이에 대한 반박자료로 보여주는 자료는 -집단군이 고작 3000명이라 신뢰성에 의문이 있지만- 대부분의 어린이가 종교를 부모로부터 주입받지 않고 스스로 종교를 택한다는 것이다. (통계 숫자와 퍼센트가 각각 다르게 쓴 점을 지적한 코멘트도 있다. 이쯤되면 통계자료는 막장?)
그러면서 종교로의 전향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이 사회 활동의 대부분이 종교를 중심으로한 커뮤니티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신이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진화론이 기정 사실화되든 정작 중요한건 자기 자식이 휴일에 파티를 할건지, 피크닉은 언제인지 같은 일상중심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독일에서는 혼자 지낼때가 많은데, 가끔 한인교회에 나갈때면 위와 같은 주장에 금방 수긍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이 장례식에서 종교의식처럼 누군가 위로해줄수 없음이 얼마나 우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의 끝에 가면 뜬금없이, 이것이 종교없는 사람들이 종교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한다. 뭘 어떻게?

대뜸 글이 이렇게 끝나고 나니,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뭉치려면 이런 저런 요소가 필요하니 그걸 배워야한다고 하는 걸로 요약이 된다. 그렇다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개신교들처럼 활발한 커뮤니티라도 만들라는 말인가?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코멘트가 맨 꼭대기에 있었다.

주장이 참 웃긴다. 작가는 같은 문장에서 통계에서 한 숫자- 3000명 -를 이용하고 또 다른 통계에서 퍼센트를 쓰고 있다.
어떻게 측정하고 비교해야 되는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작가가 아주 엄격한 종파를 잊은 모양인데, 카톨릭말이다.
카톨릭은 교회에 머물게 하려는 압력이 가족들과 신도들로부터 정말 심하다.
그런 많은 이유로 교의에 믿음이 없으면서 남아있는 상당수의 신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The argument is laughable. The author uses, in the same statement, solid numbers for one stastitic and a percentage for the other. It makes it nearly impossible to measure and compare them.
The author also forgets that in very strict religious sects, such as Catholcism, there is great pressure from family and others put on adherents to stay within the church. So much so that many remain members of the congregation despite lack of belief in the tenets.

그냥 글만 읽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을 생각을 일깨워주는 글이다. 통계라는 것도 어떤 주장을 원하냐에 따라 달라질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니 단순히 내 일상에 비춰 기사가 정말 그럴듯 하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글이란 공감하기 이전에 보고나서 의문부터 가져야 하는게 맞는듯 싶다. - 고로 공감도 더이상 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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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벌써 1주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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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일어난지 벌써 1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게 내가 참여한 첫 시위였고, 내가 세상 돌아가는걸 조금씩 알게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내가 뭐했었지? 6월달 중순 무렵 갔을때의 일은 생생하다.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던 부모님도 뿌리치고 나갔는데, 휴대전화 문자로 계속해서 집에 12시까지만이라도 돌아와 달라고 날라왔다. 사실 현장에서 촛불만 들고 사람들 하는 이야기 들으며 있는것도 조금 불안해지는데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그렇게 12시도 지나고..
광화문 앞에 시위하러 처음 당도했을 때에는 저녁 5시 쯤이었다. 사람들이 차도에 엄청나게 모여앉아 저마다 촛불들고 머리위로 이리저리 흔들었다. 저편에서 집회 전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안치환도 있고 누구도 있고 했지만 사람들 비집고 그 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멀리서 울려퍼지는 노랫가락만 들었다. 그렇게 12시가 되었나.. 광장앞 집회가 흐지부지 되었을 때..
사람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뛰기시작한다. 모였던 깃발들도 선두에서 부터 흩어지고 이곳 저곳에서 함성이 터져나온다. 전경버스닭장차가 길을 가로막자 누군가가 로프줄을 갖고와 차 뒤 범퍼에 묶고는 20명씩 짝을 이뤄 당기게 한다.
'이게 그렇게 이슈가 되던 과격시위의 시작인가?'
그렇게 당기기를 계속했을때 버스가 움직여 뚤린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있던 사람들이 그 구석으로 돌입해 들어갈때 뒤에 있던 전경들이 손살같이 달려와 길을 가로막고 대열뒤의 버스가 호위받으며 바리게이트를 또하나 만든다.(큰 길거리의 경우 5시~6시까지 이런 일이 연속해서 이루어진다.) 내가 친구와 함께 다른 좁은 길골목으로 들어서려할 때  끌어낸 전경차량을 향해 해머질을 하는 사람을 목격했다. 뜯어말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 사람도 누군가 말리면 흥분하게 될 모양인듯 싶었다. 먼 언저리에서 '저러면 안되는데...' 를 중얼거리며 지나갔고 아침에 다시 봤을때는 성한 유리창 하나 남지않은체로 있었다. 그게 그날 조선일보 첫 지면에 그대로 실려나왔다.

시위할때 전경방패밀고 앞의 전경들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밀착해서 시위대에서 갖은 욕설이 오고갈 때, 머리에서 한가지 생각이 맴돈다.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어짜피 알고 있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이란 단백질이 끓는 물에서도 죽지않는 무시무시한 단백질이란 것이 헛소문이라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있었고,  미국 쇠고기가 유통된다 하더라도 크로이펠츠 야곱 증후군이 국민들에게 발생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두명 발생할 확률이 상당히 크다'라고 할수 있겠지만 여타 전염병 발생확률과는 다른, 정말 극히 적은 확률이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체 섣부르게 공포를 불러일으킨 질병이 있다면 그게 광우병이다. 

그럼 이 사단의 장본인인 PD수첩을 조져야 하나? 그런데 가만보니, 대통령으로부터 두차례나 사과방송을 들었는데 뒤로는 이 사람들 뭣되게 만드는 짓을 하고 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하다. 정말 미안하긴 한데, 뺨 한대만 맞아달라는 것 아닌가. 그것도 엊그제까지 계속 시위하던 사람들이 정부가 그렇게 하는 걸 어떻게 사과의 의미로 받아드리겠나. 더 열받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내가 시위를 했었다. 광우병이 무서워서 한게 아니다. 정부가 무서워서 시위를 한거다. 협상을 다시하라고 그렇게 외쳐도 대통령의 설득이란게 고작 시위대는 전경으로 가로막고 소문의 근원을 찾아 밟아버리는 거였으니 이 다음 세상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몸부리치다가 그렇게 시위하러 나온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1년만에 시위의 숨통이 확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에 안타까움도 들고, 분노도 느낀다. 그런 한편으로는 85년 독재정권 같을 때에 내 선배들이 겪었을 그 폭력은 얼마나 심했는데, 지금 우리는 이 정도에 그동안 쌓아온 걸 잃어가고 있는지.. 하는 절망감도 든다.

이제는 1년전과는 또다른 이슈로 생각해본다.
이게 발언의 자유가 있는 사회인가, 원활한 교통의 흐름, 주변 상권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심지어는 시청앞 잔디를 걱정하는 경우도 있고- 집회가 금지되는게 정상인 사회인가? 아직도 'PD수첩 때문에...'라고 생각하는게 정부겠지만 내 생각엔 이 정도 태도로 어떤 중요직무에 임했더라면 시위는 어떻게든 일어났을 것 같다. 한국사회는 그런 갈등이 필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돌아갈때 까지 반년 남았을까. 누군가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을때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적어도 4년 뒤엔'
그렇게 4년 지나면 지금까지 가져온 상처 다 아물고 스라져 갈까 생각하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뭐가 다를까.
달라지는 건 시간이지, 그동안 가져온 갈등이 선거한번으로 달라질까?
오히려 잘됬다 싶다. 이왕 곪을대로 곪은 상처 터진거라 생각하고 이명박이 아닌 우리들끼리 '왜 우리는 이렇게 좌빨이니 수꼴이니 하는 철부지 없는 사회를 만들었나' 다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괴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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